인물 이야기

<변기통의 물을 떠 마신 일본의 장관>

부산갈매기88 2010. 3. 25. 16:57

<변기통의 물을 떠 마신 일본의 장관>

 

 

1983년 봄 도쿄에서 상지대학을 갓 졸업한 세이코(聖子)는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졸업 전부터 몇 년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대학에서 돈이 안 된다는 비교문화학과를 전공한 탓도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취업난은 풋내기 대학졸업생에게 쉽게 일자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대기업의 문도 두드려봤고 기계부품을 생산 수출하는 중견기업 등에도 수차례 응시했지만 그녀가 바라던 합격통지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입사원서를 냈던 도쿄 제국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너무나 기뻐 단숨에 달려갔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깔끔한 호텔에서 일할 것을 생각하니 적성이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이 가슴만 두근거렸다. 그녀는 입사절차를 거치면서 근사한 옷을 입고 손님을 맞는 로비층이나 프론트 근무를 자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6층 전체 객실의 화장실 청소담당의 수습사원으로 명령을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6층 20~30개나 되는 방마다 화장실 변기청소를 하고 나면 매니저에게 검사를 받고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며칠 동안 열심히 청소를 하던 세이코는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학부를 나온 그녀에게 자신이 화장실 청소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취업이 힘들고 먹고 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심한 악취가 나고 더러운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공부만 한 그녀에게 그런 일들은 체력적으로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녀의 갈등은 점점 커졌고 괜스레 취업을 했다는 심리적 만족감마저 떨어져 가던 어느 날 자신의 매니저가 그녀를 화장실로 불렀다. 변기의 청소상태가 불량하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세이코가 화장실 변기의 악취에 속이 메슥거려 뛰져 나오려 할 때, 매니저는 화장실에 들어오더니 세이코가 쥐고 있던 수세미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맨손으로 직접 화장실 변기를 새것처럼 반질반질하게 닦은 다음 종이컵으로 변기안의 물을 떠서 마시는 것이었다.

 

 

‘아니! 변기의 물을 퍼 마시다니!’

 

 

세이코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매니저의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매니저는 한 컵을 마신 뒤 세이코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

 

 

"제국호텔 방값이 왜 비싼지 아는가. 최고의 청소상태 유지는 기본이고 변기까지 우리 집 안방처럼 관리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고무장갑을 낀채 제국호텔의 변기를 닦으면 넌 즉시 해고야".

 

 

눈을 부라리며 세이코를 닥달하던 그 매니저의 언성은 계속 높아졌다.

"빨리 마셔--".

기에 눌린 세이코는 거부할 수 없어 변기물을 떠 마셨다.

 

 

그리고는 곧바로 반대편 화장실로 뛰어가 점심 먹은 것까지 모두 토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뒤 세이코는 변기를 닦을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갈등은 심해졌다.

 

 

"더 이상 내가 이런 더러운 일을 하면서 제국호텔에서 구박 받을 수는 없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자신을 혼란스럽게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매니저와는 눈길도 닿지 않으려고 외면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그렇게 얻고 싶었던 일자리인데다가 프로가 되려면 이 정도 시련은 견뎌내야 한다는 이성의 소리 또한 세이코를 심하게 흔들었다. 마침내 그녀는 결심했다.

 

 

"기왕 할 바에야 내가 닦은 변기가 가장 반짝거린다는 소리를 듣도록 하자. 이왕 할 거라면 화장실 청소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다.".

 

 

다음날부터 세이코는 맨손으로 방마다 변기를 닦고 광을 냈다.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걸지 않으면 한순간도 자신을 이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85년 3월. 어느덧 입사 1년이 되었고 다음 기수의 신입사원들이 층마다 배치되었다.

 

 

자신을 괴롭혔던 매니저는 후배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의미로 "맨손 변기청소와 물마시기"를 주문했다. 세이코는 여유 있는 동작으로 변기를 닦고 종이컵으로 그 안에 받은 물을 한잔 떠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1년 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리고 그녀는 초스피드 승진을 거듭한다.

 

1993년 중의원의 초선 뱃지를 달았다. 그녀는 39세에 고이즈미 내각 때 일본의 우정대신이 되었고 후쿠다 내각 때는 우주개발 담당 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6선인 자민당의 노다세이코(野田聖子: 1960.9.3)이다. 그녀는 일본 국민의 불안, 슬픔, 분노를 정책과 법률에 의하여 기쁨과 희망, 안심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그녀의 직업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우리 젊은이들은 자신의 능력은 어떠하든지 3D 업종을 기피하고 대기업만 찾는다.

담뱃값과 소주값을 위해 부모님의 등골을 빼먹으면서도 오로지 백수로 인생을 허송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님 한 방을 위해 고시를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과연 어떠한 길이 올바른 길인지는 관 두껑 닫을 때에 알지만, 그래도 인생의 역풍 속에서도 똑 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원칙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