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정주영의 빈대 철학

부산갈매기88 2010. 3. 15. 08:11

고(故) 정주영 현대그릅 명예회장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6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경해 막노동을 전전하며 자수성가의 꿈을 이뤘다

 

가난 때문에 소학교 선생님의 꿈을 포기한 정주영은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히기 위해 16살에 소 판 돈 70원을 가지고 서울로 가출을 하게 된다.

 

그는 쌀가게 배달 일을 하다가 27살에 신용 하나로 돈을 빌려 자동차 수리 공장을 하게 되었으나 반 년만에 화재로 공장은 빚더미에 오르고 한국전쟁으로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그는 1962년 건설업의 전망을 내다보고 시작한 시멘트 공장으로 재기의 발판을 삼았고 1970년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업종으로 위험부담이 크다는 조선업에 뛰어들어 한국 경제를 살리고 한국을 세계 제1위의 조선국으로 도약시키게 된다.

 

1933년 19세에 네 번째 가출을 하여 인천 공사장에서 노무자 시절의 일이다. 그때 공용으로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합숙소에 빈대가 너무 많이 들끓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고민한 끝에 식당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자는데 빈대가 상다리를 타고 올라와 계속 물어댔다. 머리를 짜내어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테이블 다리를 거기에 담가놓고 잠을 자니 빈대들이 물에 빠져 올라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잠을 자다 빈대가 물어서 잠에서 깨어 ‘빈대가 어떻게 테이블을 올라와 나를 무는가?’하고 살펴보니, 테이블 다리 쪽으로는 물 때문에 올라오지 못하게 되자, 빈대들이 숙소 벽을 타고 까맣게 올라가 천정에서 테이블 위로 떨어져 그 위에서 자고 있던 자기를 물더라는 것이다.

 

이때 정주영씨는 ‘빈대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갈구 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하물며 머리를 쓰고 열심히 노력하며 지혜를 짜내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라고 다짐한다.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강조한 정주영 회장! 그는 생명력이 강한 ‘빈대’를 보고 노력 하면 성공 못할 일이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