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스크랩] 중국 4대 미인

부산갈매기88 2010. 3. 30. 17:08

 

 

중국 4대 미인

 

 

[중국 4대 미인]

중국은 땅이 넓고 인구도 많고 기인도 많다.

천년이 흘러도 회자되는 인물들도 많다.

영웅 호걸들도 많았지만 미인들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중 4대미인을 소개합니다.

서양의 클레오파트라.조선의 황진이 등이 전래 되지만 중국미인에 견줄바가 아닌듯하다.

 중국미인들은 역사의 한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해 놓았다.

 

1. 침어-서시 (沈魚-西施 )

   :그녀를 본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 먹을 정도로 예쁘다.

      

                                                    

 서시는 춘추시대(春秋時代)말 월()나라의 가난한 나뭇꾼의 딸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빼어난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합니다.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나라의  왕 구천(勾踐)과 책사 범려 등은 오나라에 대한 복수의 방편으로 서시를 이용한 미인계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서시의 얼굴이 얼마나 예뻣던지 그녀를 한번이라도 보고자 하는 구경꾼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 )를 이루었기 때문에 범려는 서시를 보기 희망하는 사람들 한테 돈을 받아 이 돈으로 무기를 만들고 병사들을 훈련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범려는 서시를 극진하게 대우해주며 3년간의 고된 훈련을 통해 잘 다듬어진 스파이로 키웁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계 2차 대전 때의 마타하리이고 영화로 얘기하면 니키타 정도 되겠네요.

 드디어 서시는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보여지고 서시를 본 부차는 첫 눈에 서시한테 빠져 듭니다.

 부차는 서시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게 했고, 특히 그녀가 뱃놀이를 좋아 했기 때문에 대운하 공사를 벌였으며 이는 오나라의 국력을 낭비 시키고 높은 세금과 강제노역으로 백성들을 심하게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어찌됐든 서시는 오나라왕 부차의 넋을 빼놓아 부차는 국정을 돌보지 않고 사치와 환락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틈을 이용하여 월나라는 국권회복을 할 수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서시는 어려서부터 가슴앓이라는 지병이 있어 가슴이 자주 아팠고 이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게 되었는데 이 찡그린 얼굴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네요.

 물론 부차 또한 서시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에 완전히 넋이 나갔음은 물론이구요.

 또한 이 소문이 궁중 밖으로 까지 퍼지자 오나라 여자들은 자신들도 찡그리면 모두 예쁜 줄 알고

오나라 여자들 모두가 찡그리고 다녔다 합니다.

 그래서 찡그린 미인하면 서시를 말합니다.

 

2. 낙안-왕소군(落雁-王昭君)

   :하늘을 날던 기러기, 그녀의 아름다움에 날개 짓을 멈추다.

 

 때는 한()나라 원제(元帝) 건소(建昭 ) 원년.

옛날의 왕들이 다 그렇듯이 원제 또한 전국의 미인들을 모집하여

후궁으로 삼게 됩니다.

 물론 우리의 왕소군도 18세의 꽃다운 나이와 아름다운 미모로 당당히

입궁합니다.

 이런 것도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지요. 그 때의 왕들은 왜 하나같이 욕심이 많았을까요. 남 주기는 아까우니 세상 모든 여자들을 죄다

입궁시켜 놓고 보니 선택의 폭이 너무 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궁중화가인 모연수(毛延壽)에게 후궁들의 얼굴을 그리게 하고

그 초상화에 의거 수청들 후궁을 간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귀한 집안의 출신이거나 경성에 후원자가 있는 궁녀들은

모연수에게 각종 뇌물과 청탁을 하며 자신의 얼굴과 자태를 예쁘게

그려 달라고 합니다.

 지금의 촌지와 뽀샵과 같은 형태이겠지요.

 그러나 왕소군은 집안이 비천하여 아는 사람도 없고 황제에게 자신의 용모를 속일 마음은 물론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결국 모연수는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왕소군을 추녀로 그려서 황제에게 보여줬고 이런 왕소군한테 황제는 5년동안 전혀 관심이

없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던 중에 한나라는 흉노족(匈奴族)의 지배를 받게 되고 흉노의 왕인 호한야(胡韓耶)를 장인으로

모셔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에 원제는 자신의 호탕함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부인(후궁)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도 된다는 제안을 합니다.  원제는 호한야에게 직접 선택하도록 하였고, 호한야가 가르킨

그 곳에는 천하절색의 미녀가 사뿐히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곱고 윤기있는 머릿결은 광채를 발하고, 살짝 찡그린 두 눈엔 원망이 서린듯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처음으로 왕소군을 실제 보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모연수의 목을 베어 버립니다.

 졸지에 말도 통하지 않는 흉노족에게 시집을 가게 된 왕소군은 가는 길에 서글픈 자신의 심정을 

노래했는데요, 그 구슬픈 소리와 왕소군의 처연한 아름다움에 기러기가 날개짓을 잊고 그만 떨어

졌다는 말에서 낙안(落雁)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합니다.

 또한 왕소군이 흉노족 호한야한테 시집가서 지은 시중에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유명한 구절이

이것입니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오랑케 땅인들 화초가 없으련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3. 폐월-초선(閉月-貂蟬)

          :달이 부끄러워 숨어버린 얼굴

                                                                     

  초선에 대한 기록은 확실치가 않습니다.

실재했던 인물인지 가공의 인물인지 어느것 하나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지난 2000년 5월경에  초선의 무덤이라고 추측되는 묘를

발굴하기는 하였으나 이것마저 확실치는 않구요. 

 그러다보니 초선은 왕윤의 양녀(養女) 또는 가기(歌妓), 동탁의 시녀(侍女), 여포의 아내 등등 갖가지 설이 난무합니다. 

 초선! 당신은 도대체 누구의 여인이란 말입니까?

 왕윤은 동한왕조를 찬탈하려는 동탁(董卓)을 제거하는 작전을 짭니다. 전형적인 미인계(美人計)요, 연환계(連環計)의 계략을 꾸미는데, 초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먼저 초선을 젊은 여포(呂布)에게 결혼을 약속하고는 늙은 동탁에게 바칩니다. 동탁과 여포는 양부와 양자로 맺어진 사이인데 이 둘이 서로 칼을 들이대게 하려는 반간계(反間計)의 작전을 펼친 것입니다.

 여포가 어쩔 수 없이 초선을 동탁에게 빼앗기다시피 바칠 수 밖에

없게 되자 속에서는 불이 일었죠. 이러던 차에 여포가 동탁부에 들러

봉의정(鳳儀亭)에서 초선을 만나고 이에 초선은 그 동안 동탁에게서

받은 온갖 설움을 눈물로 하소연합니다.

 물론 시나리오에 의한 초선의 연기이기는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예쁜여자의 한숨어린 눈물에 돌지 않는 남자가 있을까요.

 여포는 당연히 분노하였고 동탁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동탁에게 칼질을 합니다. 

그러나 노회한 동탁이지만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고 오히려 여포를 궁지로 몰아 내쫒습니다.

 이 둘 사이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고 중간에 낀 왕윤(王允)은 여포에게 지혜를 주어 여포의 양부(養父)인 동탁을 양자(養子)인 여포가 죽이게 합니다.

 이러한 계략이 성공한 후에 초선은 달밤의 후원에서 왕윤의 무사기원을 달에게 절했는데,

그 때 구름이 달을 가렸기에 이 모습을 본 왕윤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선의 미모에 달도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구나"한데서 폐월(閉月)이라는 말을 얻었다 합니다.  

 

 

4. 수화-양귀비(羞花-楊貴妃)

    : 꽃을 부끄럽게 하는 그 도도함이여                                                            

  

 양귀비는 내 마음속의 여인입니다. 아주 꼬맹이었을 때부터 미인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양귀비였습니다.

 물론 어른들의 대화에서 나오는 이름이었지만 얼마나 예쁘길래

저렇게 까지 양귀비를 찾나 했으니까요.

오죽하면 머리 염색약중에 양귀비라는 상표가 있을까요.

 현종과 양귀비가 나눈 것이 사랑인지 천하의 불륜인지는 논외로

하구요.

 남녀간에 만남은 분명 운명적인 그 무엇인가가 있기는 있나 봅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를 잃고 실의에 빠진 일상을

정상으로 돌리려고 후궁의 3천명이 넘는 아리따운 여인들과 그렇게

많은 노력을 했건만 이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채, 그런 그에게 삶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대상이 자신의 며느리라니요. 

 양귀비의 본명은 옥환(玉環)이고, 원래는 현종의 열여덟번째 아들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아내였습니다.

수왕 이모(壽王 李瑁)는 현종이 그토록 사랑한 무혜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니 양귀비는 움직일 수 없는 현종의 며느리인 것입니다.

56세의 시아버지와 22세의 며느리가 사랑을 불 태운다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여 엄청난 스캔들이 아닐 수 없죠.  

 양귀비는 고아 출신으로 양씨 가문의 양녀로 들어갔기 때문에 혈연을 같이 할 친척이 없었지만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양씨 일족에게도 후한 대접을 하게 됩니다.

출처 : 헤베
글쓴이 : nymph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