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다시 생각해 보는 무소유>

부산갈매기88 2010. 5. 10. 08:53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신의 말처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이 땅에서의 연을 끊었다고 한다.

 

갖지 못해 안달하고 소유하기 위해 치열한 현실에서 무소유의 길을 걸어갔다는 사실 사체가 감동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승려의 무소유가 이처럼 야단법석을 떨 이유는 못된다. 안거위락(安居爲樂)의 길을 거부하고 출가(出家)한 승려에게 본디 소유는 별 의미가 없다.

 

소유욕은 자기 영달과 가족의 안위를 위한 것인데, 선방(禪房) 승려의 수행에 걸림돌일 뿐이다. 무소유가 법정스님만의 고고한 덕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칭송받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과도한 소유욕으로 비난받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법정 못지않게 무소유를 실천한 분이 적지 않다. 기독교장로회의 김재준 목사는 자신의 글에서 “땅 한 평 소유한 적이 없다.”고 했고, 한경직 목사는 세상을 떠나기 거의 20년 전인 1981년 가족들을 모아놓고 “나에게는 가진 것이 없다. 땅 한 평 없고 내 소유의 집도 없다. 나의 이름으로 된 것이 있으나 사실은 나와 상관이 없는 공적인 것일 뿐이다. 나는 단지 너희들을 위해 기도해 줄 뿐이다."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장기려 박사의 무소유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실로 그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는 “나도 늙어서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다소의 기쁨이기도 하나 죽었을 때 물레밖에 안 남겼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다.”며 작은 소유를 부끄러워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고신의료원 3동 8층 목탑방에 가보면 그의 세간이 얼마나 단출했던가를 알 수 있다. 개인기록과 사진첩, 늘 입고 다니던 옷가지가 전부였다. 책이라고는 십여 권의 의학서적과 성서조선, 우찌무라 간조 전집, 그리고 야니이하라 다데오의 강해집이 고작이었다.

 

장기려 박사 주변에도 그런 식으로 산 사람이 적지 않다. 제자 의사인 강현진, 정태산 박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손봉호 박사 또한 이런 삶을 가르치고 있는 실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실 청빈과 무소유는 기독교 전통에서도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으로 권장돼 왔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가치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시민으로 살고자 했다. 두 발은 땅을 딛고 살았으나 그 시대의 가치로부터 자유했던 심리적 이민자들이었다.

 

말하자면 나그네와 행인 같은(벧전2:11) 역려과객이었다. 이들을 파로이코이, 곧 ‘나그네’라고 불렀다. 이들에게 있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이런 삶의 방식에 해당하는 라틴어가 페레그리누스(peregrinus)였다. 영어의 필그림(pilgrim)은 여기서 기원했다.

 

이 말 속에는 소유욕과 배치되는 비영속성, 일시성, 잠정성 등의 의미가 있다. 소유에의 욕망은 세욕이었고, 낯선 가치가 있을 뿐이다. 비록 4세기를 거쳐 가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했던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멋은 퇴락하게 되지만, 그래도 가난과 청빈, 무소유는 경건한 삶을 추구한 이들의 고상한 가치였다.

 

451년에 모였던 칼케돈 공의회에서 작성된 규정(canon) 제3항에서는 성직자의 재산소유가 금지됐다. 성직자들에게 ‘무소유’를 요구한 것은 금욕주의자가 아니라할지라도 금욕적인 삶을 요구한 것이다.

 

중세의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는 소유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욕망이다.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고 했다.

 

14세기 말의 신비주의 단체인 ‘공동생활형 재단’의 ‘공동생활(common life)'이란 공동체적 생활을 말할 뿐만 아니라 공통으로 가져야 하는 불가피한 것으로 살아가자는 단순한 삶과 무소유를 지향한 것이다. 하기야 칼빈도 극빈에 가까운 청빈의 삶을 살았으니 무소유의 가치를 추구한 인물이었다.

 

과도한 소유에의 욕망은 나그네성의 상실에서 온 전도된 가치였다. 문제는 4세기 이후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권력과 명예와 부에 대한 욕망을 당연한 것으로 들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유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인양 맹목적인 부를 추구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다시 우리를 성찰하게 해 준다.

이렇게 볼 때 스님의 법문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기독교보 4월 24일자 시론 <고신대학교 이상규 교수>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