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

<감사로 행복을 창조하라>

부산갈매기88 2010. 7. 6. 09:36

 

시편 100편 1~5절

 

조선일보 논설 고문을 지낸 이규태 씨는 한국인 갖고 있는 공통적인 병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 결핍증’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나올 때 가게 주인이 대부분 “또 오십시오.”라고 말하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장난감을 사주면 “신 난다.”라고 말하지 먼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감사가 무엇입니까?

남의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의 느낌이 흡족하다. 흐뭇하다. 따뜻하다 등입니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많고 많은 가게 중에서 내 가게를 선택했다는 생각을 해보면 마음을 흐뭇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에 눈길을 빼앗기기보다는 그 장난감을 들고 오신 부모님의 손이 먼저 보인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나타나게 될 죄의 유형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고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 자기 자신에게만 취해 있어 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돈을 사랑해 돈이라면 못할 것이 없고, 자기의 재능이나 일의 성과 등에 대해서 스스로 자랑스러워해 건방지고 방자하며, 나 자신을 위해 남의 이를 스스럼없이 방해하고, 옛일을 기억하지 않음으로 부모를 거역하고, 끝없는 욕심으로 감사치 아니하며,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거룩과 이별하고 그래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똑같아지기 위해 걱정하고 애태우는 삶입니다. 오늘을 사는 이 시대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행복이 무엇입니까?

‘삶이 기쁘고 즐거워 만족스러운 상태’가 사전적 의미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의 저자요, 행복론의 작가인 칼 힐티(Carl Hilty)의 책에 보면 행복의 첫째 조건이 감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감사에 눈을 떠야 합니다. 감사와 행복은 같은 뜻입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내 마음이 흡족하고 흐뭇하고 만족스럽고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세의 사람들이 그렇게도 찾아 헤매는 행복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지으신 자이시므로 우리는 그의 것이고 그의 백성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초가삼간이 아니네?)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리라.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니 내가 어찌 이 초대를 거절하리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냥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감사하고 송축하라”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고 믿으면 여호와가 우리의 목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대단하고 위대한 일을 성취한 후의 감사함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생활 가운데서의 감사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이 행복하고, 그 분의 사랑 안에 인도받으며, 그분의 도우심을 받으며, 보호하시는 은혜를 입음이 행복이고 감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약속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 감사로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로 기적을 만드는 주인공이 됩시다. 또한 감사의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성도가 돼야 합니다.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형편일지라도 먼저 감사함으로 행복을 창조하는 자가 됩시다.

 

 

<남광교회 김명수 목사> 기독교보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