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나홀로 식사'

부산갈매기88 2010. 12. 24. 08:10

"도쿄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 2008년 가을부터 '화장실에서 밥을 먹지 말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작년 7월 일본 아사히신문이 대학생들의 '화장실 식사' 실태를 전했다. 사람들은 설마 했다. 누군가 장난삼아 붙인 종이를 보고 신문이 오보했다는 의심도 했다. 올봄 호세이대 교수가 학생 설문조사를 공개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400명 중 9명이 화장실에서 식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일본 정신과 전문의 마치자와 시즈오는 '런치메이트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혼자 점심 먹는 걸 공포로 여기는 심리를 일컫는 말이다. 일본인 중엔 '나 홀로 식사'족(族)이 많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꺼린다.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서다. 이런 사람은 혼자 산보하면서 빵을 먹거나 도서관 칸막이 자리에서 밥을 먹기도 한다.

▶혼자 밥 먹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미국의 한 생활정보 사이트는 남과 함께하는 번잡함을 피해 호젓한 식사시간을 가지려는 사람을 위한 8가지 요령을 들었다. 첫째 점원이 "몇 분이세요?" 물을 때 크고 자신 있게 "한 사람이오"라고 소리쳐라. 모두들 당신을 존경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둘째 음식점 평론가인 척하라. "음, 과연" 하는 표정으로 메뉴와 서비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주위에서 당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 한편 성공적인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원한다면 홀로 식사하는 버릇을 절대 피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혼자 밥 먹지 마라'의 저자 키이스 페라지는 "현대인은 늘 네트워킹 속에서 움직여야 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긴 인연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최근 일주일 내내 집무실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했다고 한다. 총리 비서실은 "혼자 조용히 국정운영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다른 나라 정부 수반에게선 보기 힘든 모습이다. 끊임없이 소통해야 할 총리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처럼 보인다는 걱정도 나온다. 낮은 지지율과 나라 안팎 난제들에 눌려 있다 보면 식사라도 홀로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외롭고 어려운 것이라 하는가 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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