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팀이 따낸 금메달은 한국팀이 거둔 성과 중에 가장 빛나는 백미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4번이나 거머쥐고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쿠바, 그리고 미국, 일본을 연파하고 9전 전승을 거둔 끝에 일구어 낸 퍼펙트 골드는 우리 자신도 믿기 어려운 기적 같았다. 그런데 이 기적은 선수들을 신뢰하고,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을 듬뿍 안겨주었던 감독의 리더십에서 나온 것이다.
‘국민감독’으로 떠오른 김경문(1958~)감독은 선수-코치시절 주목받지 못한 2류였다. 그는 공주고와 고려대를 나와 두산의 전신인 OB의 포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했지만, 프로선수 10년간(1982~91년) 통산타율 2할2푼, 6홈런에 그쳤다.
히딩크 감독이 1류 선수가 아니었던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그는 주목받는 코치도 아니었다. 항상 2인자의 설움을 안고 있던 그는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은 어려움을 많이 겪어본 것 밖에 없다. 그게 내 자산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선수시절 잦은 부상으로 고전했던 그는 머리를 다쳐서 5일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허리 수술도 하고, 다리도 부러져보고, 손도 부러져보고 운동선수로서 겪지 말아야 할 일을 다 겪어 보았다.
그는 지도자가 돼서 마음으로 다가가서 뒤에서 묵묵하게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지도자로서 선수들을 지시와 명령으로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기회를 주는 감독이 되었다.
그의 야구 스타일을 ‘소프트 리더십’, ‘뚝심야구’, ‘믿음의 야구’ 라고 평하는데 2008년 올림픽에서 그는 ‘김경문 야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언젠가는 해낼 것이라는 믿음으로 문제가 있는 선수를 끝까지 밀어주는 것이 김경문식 뚝심야구인데 그것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한 것이다.
그는 역전패 직전까지 한기주를 고집했고, 타율 1할3푼 대의 이승엽을 끝까지 믿었다. 그래서 한국팀의 4번의 역전승 5번의 1점차 승리는 매번 영화를 찍는 것처럼 힘겨운 승부였다. 하지만 그러기에 온 국민은 손에 땀을 쥐고 성원했고 마침내 9연승 퍼펙트 골드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김 감독의 지론은 ‘훌륭한 선수는 중요할 때 한 번만 해주는 게 진짜’라는 것이다. 이승엽은 대회 전반 내내 타율이 1할 중반을 밑돌았다. 2대2 동점이던 준결승 한일전, 8회말 1사1루의 결정적인 순간, 대타를 고려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승엽을 끝까지 믿었고 결국 이승엽은 김 감독의 끈질긴 믿음에 천금 같은 역전 홈런으로 보답했다.
그리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이승엽은 또 다시 투런 홈런으로 금메달을 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낸다. 김 감독은 “이 선수는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무한 신뢰를 주는 것이다. 그는 이승엽의 타격 컨디션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최근 1군 복귀 후 타격을 봤는데 WBC 때의 스윙이 나오고 있다. 한창 좋았을 때의 타격 밸런스를 회복한 것 같다. 4번을 맡길 수 있는 타자는 이승엽밖에 없다. 대표팀에 큰 힘이 될 것이다”고 평가했고 그대로 그것을 실천했다.
올림픽에서의 그의 전술은 ‘믿음의 야구’라는 평을 받았고 그는 믿음을 심어주는 리더로 국민의 뇌리에 길이 기억될 ‘국민감독’으로 탄생했다. 2002년 월드컵이 히딩크라는 용장을 만나 ‘4강 신화’를 만들었다면, 2008년 올림픽은 김경문이라는 용장을 만나 ‘퍼펙트 골드, 믿음의 리더십’의 신화를 남겼다.
<중소기업뉴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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