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

부산갈매기88 2009. 5. 25. 06:58

 

로버트 카파(Robert Capa : 1913~1955)의 삶은 매순간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결단의 순간이었다. 그는 전쟁 속에서 태어나서 전쟁 속에서 사라진 사진작가다. 그는 1913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하는 가난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학생시절 유태인 차별 정책과 공산주의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조국에서 쫓겨났고, 베를린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기도 했으나 독일어에 능통하지 못해서 세계 공통의 언어인 사진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몰입했다.

 

1933년 히틀러의 나치가 집권하자 그는 또 다시 프랑스 파리로 망명해야만 했다.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상황이 맞물려, 끊임없이 쫓기면서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해야 했던 그는 20세기 중반에 벌어졌던 5개의 전쟁을 취재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카파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1936년 스페인 내란에서 찍은 <병사의 죽음>이었다. 그 사진은 한 병사가 돌격하기 위해 참호 속에서 뛰쳐나가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찍은 것인데 그 사진이 ‘라이프(Life)’지에 실리면서 카파는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평생 포토저널리스트로써 살게 만들었다. 카파 이전에도 이후에도 전쟁을 찍은 사진작가는 많았지만 카파만큼 현대 사진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는 드물다. 그것은 카파가 전쟁의 한가운데서, 전쟁의 가장 가까운데서 생명을 내던져가며 전쟁이라는 가장 급박한 상황을 포착해 낸 탓이다.

 

그의 출세작이 된 <병사의 죽음> 같은 경우 돌격하는 병사의 가장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면 그는 그 순간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공수부대의 낙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포탄이 작렬하는 가운데 직접 낙하산을 타고 사진을 찍었고, 지뢰를 잘못 밟고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 사람이었다.

 

1944년 6월 6일, 2차 세계대전의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버린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오마하 해변에서 카파는 병사들과 함께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두 대의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106여장의 사진을 찍었다. 필름을 전해 받은 라이프지의 암실 담당자가 흥분한 나머지 실수를 해서 겨우 8장의 사진만을 인화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더 유명한 사진이 됐다.

 

라이프지는 그의 사진에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Slightly out of Focus)’라는 카피를 달았고, 그 사진들은 훗날 영화<라이언일병구하기> 모티브를 주기도 했다. 그 사진들은 거칠고 흔들리고 핀트도 맞지 않은 사진들이었지만, 그 사진에서는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더욱 절실히 묻어나고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보도사진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카파는 단순히 사진만을 잘 찍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If your pictures aren’t good enough, you’re not close enough.)”라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로 철학을 지닌 포토저널리스트였다. 또한 카파의 사진은 그의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그의 눈을 통해서 찍힌 것들이었다. 그는 전쟁을 취재한 경험을 책으로도 펴냈는데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로 소개된 그 책은 종군기자를 비롯한 많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 됐다.

 

카파는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도중 지뢰를 밟아 41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그런 그의 혼은 카파이즘이란 기자정신으로 남아서 전장을 누비는 다른 사진기자들의 정신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