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위대한 결단: 웅딘 코웨이 윤석금 회장

부산갈매기88 2009. 5. 14. 08:28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자수성가형 기업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영업사원을 시작하면서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72년, 입사 2년째가 됐을 때 그는 브리태니카 본사가 전 세계 54개국 중 최고의 세일즈맨에게 수여하는 ‘밴튼 상’을 받는 기염을 토하면서 놀라운 세일즈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1980년 웅진출판을 시작으로 불과 20여년 만에 현재 17개 계열사, 연간 매출 5조 원 규모의 맘모스 그룹으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다.

 

하지만 윤 회장의 기업이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그도 위기를 맞고 어려움도 겪었지만 위기를 기회 삼아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IMF 경제위기가 다가오던 1997년 무렵 웅진식품은 매달 10억의 적자를 보고 있었고, 정수기를 취급하는 웅진코웨이도 제자리를 잡고 있지 못했다. 국내 정수기 사업은 8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대당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이라 판매가 미미했다.

 

90년대부터는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해서 생수를 사서 마시거나 정수기를 들여 놓는 가정과 업소가 늘어나 시장이 크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서 1997년의 IMF사태가 벌어졌다. 정수기 판매는 150억∼160억 원 하던 월매출액이 반 토막이 나서 80억원대로 급감했다. 그와 더불어 골프장, 정수기, 식품 등 대부분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그룹 전체에 위기감이 팽배했다. 윤 회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정수기의 렌털(임대) 사업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렌털 사업은 회사로서는 위험부담이 큰 사업이었다. 소비자들이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상이 있다고 느껴지면 ‘정수기를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주위의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윤 회장은 소신을 가지고 밀어부쳤다. 그의 도박은 적중했다. 정수기 렌털 사업은 외환위기 여파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겼고, 월매출은 80억 원대에서 일약 월 800억 원대로 확대됐다.

 

이 사업이 그렇게 확대된 데에는 소비자에게 빌려준 정수기를 관리하는 ‘코디(‘Coway Lady’의 줄임말)’의 역할이 컸는데 그것도 윤 회장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코디는 정수기 필터를 교체해 주는 일이 주업무인데 ‘아줌마’ 이미지가 강한 주부사원을 깔끔하고 세련된 용모의 서비스 요원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 성공 포인트였다.

 

이영애, 김정은 같은 톱모델을 내세워 광고를 했고 친절한 코디가 각 가정을 방문해 정수기 필터를 교환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서비스는 금세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 렌털 사업은 날개를 달아서 가입자가 2000년 12월 50만 명을 돌파 한데 이어 2002년 5월 100만 명, 2004년 300만 명으로 불어나면서 연 매출 1조원대 규모로 성장했다.

 

웅진은 모든 기업이 판매만을 생각했을 때 렌털이라는 새 방식을 찾아내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블루오션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웅진코웨이의 렌털 사업을 꼽고 있다. 그때부터 윤 회장은 정수기 시장에 렌탈 서비스를 도입해서 블루오션 시장을 개척한 경영혁신가로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웅진그룹의 전체 매출은 2012년까지 1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데, 윤 회장은 건설과 에너지 등 새롭게 진출한 신사업이 예상보다 빨리 본궤도에 오름에 따라 “정수기, 출판, 학습지 등 기존 사업이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코웨이를 중심으로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고 내다보고 있다.

 

<중소기업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