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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유명 특목고 간 韓특목고 교사들, 실험실 보고 '깜짝'

부산갈매기88 2011. 8. 2. 15:28

뉴욕에서 만난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한국 교육을 예찬했다. 그는 반복적인 학습과 잠을 줄여가면서 절대 공부시간을 확보하는 한국식 교육이 미국에 필요하다고 믿었다. 1만 시간을 투자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과 잘하는 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마태복음 효과'가 한국식 교육모델에 잘 체화(體化)되어 있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틈만 나면 '엄친아'처럼 인용하는 한국 교육 칭찬도 같은 맥락이다.

글래드웰은 또 뉴욕 등에서 가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과 방과 후에 주입식 교육을 실시하는 실험적 공립학교인 '아는 것이 힘 프로그램(KIPP·Knowledge Is Power Program)' 모델에 감명받았다. 가난한 흑인의 딸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대학 입학을 통해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밟는 모델은 '4당(當)5락(落)'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명문대에 진학한 한국의 성공 수기와 분명 닮았다.

그러나 글래드웰이 보지 못한 것이 있다. '아웃라이어'에는 한 KIPP 교사가 수학 수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교사는 끙끙대며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이 스스로 해법을 발견하도록 기다린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인 스스로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도록 한다. 하지만 글래드웰이 한국 교실과 학원을 방문했다면, 공식을 외워서 최대한의 속도로 진도를 빼는 '속도전'을 목격했을 것이다. 절대 공부시간을 확보하고 기본기를 다지는 것은 같지만 한국의 교육법과 KIPP 모델은 차이가 있다.

한국 특목고 교사들이 뉴욕의 유명 특목고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교사들은 이 학교의 실험실을 보고 놀랐다. 실제 실험을 마치고 여기저기 놓여 있는 각종 해부 기구와 잔해로 실험실은 지저분했다. 그중 한 교사가 "우리는 실제 실험을 하지 않아 실험실이 깨끗한데…"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이공계 교육의 발전을 위해 '스템(STEM: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의 앞글자를 딴 것)'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예술(Art)을 보태 스팀(STEAM)이 미국의 살길이라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독려한다. 여기까진 한국과 비슷하지만 학생들에게 흥미를 일으키는 방법론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가령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후원하는 '미래를 위한 해법(solve for tomorrow)'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수학·물리학 등을 이용해 자신들이 사는 동네의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한 비디오를 출품한 학교에 상금과 컴퓨터를 준다. 오리건주의 한 고등학교는 컬럼비아강의 수력발전 댐 건설로 연어가 줄어들자 수력발전 대신에 태양 및 풍력발전 시스템을 만들어본 작품을 출품했다.

스티브 잡스 한 사람 때문에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천재적 기업인이 게임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자 학습 속도는 빠르지만 창의력은 부족한 우리 기업들이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하면서도 창의적인 방법론을 결합하는 새로운 한국형 교육모델 창조가 필요하다.

 

조선일보/박종세 사회정책부 차장 js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