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산갈매기88 2009. 5. 28. 07:25

어느 부부가 결혼한 지 이십 년 만에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러니 칠 대 독자인 그 아들은 일곱 살 되던 해에 홍역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사흘간 연이어 울었다. 그런 끝에 몸져눕고 말았지만 아버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부부는 아들을 뒷산에 묻었다. 어머니는 다시 한번 통곡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하늘만 멀거니 바라볼 뿐 역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마침내 아내가 남편에게 항의하였다.

 

“당신은 그러고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고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냐고요?”

아내는 남편의 옷소매를 잡고 울부짖었다.

 

“여보.”

 

그제서야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가 사흘 만에 처음으로 낸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여보’라는 짧은 한 마디조차 다 끝낼 수 없었다. 그가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여는 순간 그의 목 안에서 울컥한 무엇이 올라오면서 목을 콱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흘 동안 참아 왔던 슬픔에 북받친 아버지가 울기 시작했다. 꺼억꺼억 토해내는 울음소리와 함께 그의 입에서는 벌건 핏덩이가 뭉텅뭉텅 쏟아졌다.

 

그날 아버지가 쏟은 피는 한 되가 넘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사흘 동안 흘린 눈물의 양은 그보다는 좀 적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자신의 몸 안에 키운다. 자식이 태어나면 어머니는 자식을 집 안에서 키운다. 그러나 아버지의 몫은 ‘안’이 아니라 ‘밖’이다. 아버지는 자신은 물론 집 안에 있는 자식과 함께 자식을 돌보는 아내까지 보호해야 한다. 그러려면 밖에서 수많은 경쟁자와 경쟁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지금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살벌한 적과 대치중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가혹함과 무서움. 그 세상 속에서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상처의 연속이다. 처음 그 상처는 눈물로 얼룩지지만 남자인 아버지는 곧 눈물은 그친다. 눈물은 곧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패배하는 날. 아버지와 함께 한 가정이 무너진다. 따라서 아버지는 패배할 수 없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눈물을 질끈 씹어 삼킨다. 한 번 삼키고 두 번 삼킨다. 열 번을 삼키고, 백 번을 삼킨다.

 

그러는 동안 눈물은 피로 변한다. 묽은 피에서 진득한 피로, 마침내 피멍울로 엉킨다. 눈물로는 다 못할 아픔, 말로는 다 못할 아픔! 그 아픔이 서리서리 엉킨 핏방울이 아버지의 가슴을 턱턱 막아온다.

 

동화출판사 <행복은 따뜻한 마음에서 온다>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아버지만이 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처자식 굶기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쓴다.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 생채기가 나도 그건 아버지가 감당할 몫이다. 가정이란 울타리를 보호할 책무 때문에. 그렇게 오늘날 아버지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단지, 처자식이 웃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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