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

부산갈매기88 2009. 6. 2. 08:56

1852년 영국의 군함 버큰헤이드호는 해군 병사들과 그 가족을 태우고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630명이었는데, 그중 여자와 어린이들이 130명이었다.

 

그날 밤 2시, 배는 케이프타운에서 65km 떨어진 해역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순식간에 배 안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 배 안에서 저마다 살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준비된 구조선은 세 척뿐이었다. 한 척당 정원은 60명이었으므로 이 와중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630명 중 180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 배 선장은 시튼 대령이었다. 대령은 곧 병사들을 갑판에 불러 모았다. 그런 다음 병사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횃불을 들고 아이와 여자부터 구조선에 태우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한 팀은 부동자세로 갑판 위에 서 있도록 명령하였다. 그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배가 기울어져 가는 상태에서 갑판 위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선장은 그들이 서로 다투어 살려고 아우성을 치면 어린이와 여자들이 구조될 수 없겠다고 생각하여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수백 명의 병사들이 그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살아나온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조금 뒤에 가라앉은 배로부터 수십 명의 병사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그들은 떠다니는 널빤지에 매달려 구조선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 중에 안전한 구명보트로 접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조선은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도착했다. 그 사이에 이미 배에 탔던 사람 가운데 4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선장인 세이튼 대령 또한 죽었다. 대령은 구조선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큰 판자를 붙들고 있었지만 죽어가고 있는 병사 두 사람을 위해 자기 판자를 준 다음 죽고 만 것이다.

 

그때 목숨을 건진 존 우라이트 대위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하였다.

 

“우리는 모두가 다 선장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그 명령은 우리에게 죽으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그것은 잘 알면서도 우리는 평소처럼 상관의 명령에 따랐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보여준 의연함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린이와 여자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쪽을 선택하여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병사들과 함께 남자답게 행동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김정빈 <행복은 따뜻한 마음에서 온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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