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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착한 판다'일 것이란 착각?

부산갈매기88 2011. 10. 6. 11:18

중국과 영원히 이웃하고 살아야 할 우린 앞으로도 이런 장면을 자주 볼 것 같다. 지난주 아시아 농구선수권대회 기자회견에서 허재 국가대표 감독이 폭발했다. 중국 기자들의 도발적 질문에 흥분하며 자리를 박차는 장면이 우리를 착잡하게 했다.

중국 기자들이 퍼부은 질문은 정상적인 취재 목적이 아니었다. "중국 국가가 연주될 때 한국 선수들이 왜 움직이느냐"는 등 모욕을 주려고 작심한 기색이 분명했다. 기이한 것은 자칭 진보 그룹과 좌파 논객들의 침묵이었다. 같은 일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벌어졌다면 펄펄 뛰며 흥분했을 그들은 시종 입을 다물었다.

중국 민족주의는 갈수록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석 달 전엔 중국군 참모총장이 한국 국방장관을 앞에 놓고 일장 연설하는 일이 있었다. 인터넷에선 황당한 반한(反韓) 음모론이 난무하고, 우리 고대사(史)까지 손을 대고 있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좌파 진영이 중국의 무례함을 문제 삼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의 '한국 때리기'는 올 것이 온 것이다. 13억 중국 인구 중 소득 2만달러 이상은 이미 6000만을 넘어섰다. 우리보다 잘사는 중국인이 한국 전체 인구보다 많아진 것이다. 경제적 콤플렉스를 떨치는 순간, 중국은 억제했던 '제국(帝國)의 DNA'를 밖으로 발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반한 감정을 전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적당히 통제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확 불이 붙도록 조장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때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중국 유학생 시위가 대표적 사례다.

그저 감정이 상하고 마는 정도라면 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국 민족주의는 우리의 영토와 영해를 건드리는 단계까지 나갔다. 중국 어선의 우리 수역(水域) 침범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말려야 할 중국 정부는 도리어 큰소리친다.

이제 시한폭탄 같은 이어도 문제가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최근 이어도 인근엔 중국 해경(海警) 감시선이 출몰하는 일이 잦아졌다. 몇달 전엔 중국 해경이 우리 배에 무력 시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어도 해양기지를 기습 점거하는 사태를 현실적 시나리오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어도 방어는 유사시 우리 군함을 중국보다 빨리 투입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중국은 상하이 옆 서산다오에 해군기지를 지어 이어도 도착시간을 13시간으로 줄였다. 반면 부산에 주둔한 우리 해군이 이어도까지 가려면 그보다 8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이어도에 가까운 제주도 남단에 해군기지를 만들자는 구상이 나왔다. 영토주권이 달린 국익 문제지만, 좌파는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이어도를 분쟁지역화(化)하려는 중국의 전략을 모르는 것일까. 제주기지를 포기하면 중국이 이어도와 서남해역의 통행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 믿는 것일까.

우리는 중국 특수(特需) 덕에 먹고 산다. 때문에 중국의 언행이 못마땅해도 국익을 위해 참아야 할 때가 있다. 좌파의 침묵도 전략적인 것일까. 전략적 친중(親中)을 한다면, 왜 우방인 미국·일본엔 전략적 접근을 하지 못할까. 중국이 양순한 판다 곰이라 착각하는 것일까.

한국 국방장관이 모욕당하던 날, 한 좌파 일간지는 "중국의 외교 무례만 탓할 일이 아니다"라고 썼다. 이어도가 위협당해도, 우리 바다가 불법조업에 유린돼도 좌파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토록 자주와 민족을 외치는 사람들인데, 이런 모순이 없다.

조선일보/박정훈 기사기획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