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대로 주저앉고 마는 사람도 있다. 지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산소탱크로 불리며 세계적 스타플레이어가 돼 있는 박지성(1981~)에게 아주 절박한 위기가 닥쳐왔다.
그가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에 입단했을 때다. 그는 입단한 지 2개월도 안 돼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고 2003년 3월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무릎 연골 가운데 일부가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한·일 월드컵을 치르면서 닷새 이상 쉬어 본 적이 없을 만큼 몸을 혹사했기 때문이었다.
박지성은 난생 처음 수술대에 올랐고 찢어진 무릎 연골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이후 박지성은 최악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고통스러운 재활훈련을 받았지만 컨디션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네덜란드축구의 빠른 스피드와 거친 몸싸움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2류 선수로 전락했다. 경기의 리듬을 타지 못하고 한 템포씩 늦은 플레이를 하자 동료들이 패스를 꺼리기 시작했고 아인트호벤 팬들까지 그를 야유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유의 자신감마저 잃어버리고 절망의 늪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그때 그에게 유혹의 손길이 다가왔다. J리그 ‘빗셀 고베’와 ‘교토 퍼플’이 박지성에게 영입 제의를 해온 것이다. 특히 고베는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박지성을 구단의 간판스타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박지성은 잠시 흔들렸다. 익숙한 무대인 일본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고 새 출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유를 퍼부어대는 아인트호벤의 팬들을 생각하면 떠나는 것이 훨씬 편할 것도 같았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히딩크 감독이 말했다.
“너는 아직 포기하고 돌아갈 때가 아니다. 포기하지 말고 남아서 계속 도전해라. 난 내 눈을 믿고 너를 믿는다. 너는 아인트호벤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말은 박지성에게 용기를 주었다. 사실 박지성은 퇴출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들려오는 홈팬들의 야유를 들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격려를 들으며 자신을 짓누르던 불안감에서 벗어났다.
그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네덜란드에 남아서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팬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달콤한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재도전을 택한 뒤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박지성은 “나는 축구 감옥에 갇혀 있고 내가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감옥의 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단내가 나도록 연습을 했고 매 경기에 성실하게 임했다.
히딩크 감독은 극성스러운 팬들이 운집한 홈경기보다는 원정경기 위주로 박지성을 내보내며 그의 부활을 돕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다. 그는 끊임없이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주문을 외우며 자신감을 키웠고 차차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2003~2004시즌 후반기부터 패스 타이밍과 골 결정력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해졌고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도 따뜻하게 바뀌었다. 그의 빛나는 변신에 홈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박지성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맹활약했고 결국 시즌이 끝나자 꿈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쾌거를 이뤘다.
박지성이 만일 J리그의 유혹에 넘어갔거나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에 대한 믿음을 버렸다면 오늘날 맨유의 산소탱크는 없었을 것이다. 박지성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중소기업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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