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는 부자들이 타는 고급차로 이름이 높다. 이 차의 이름은 찰스 스튜어트 롤스와 프레데릭 헨리 로이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데, 로이는 공학도여서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롤스는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자동차 경주광이었는데, 두 사람은 1904년 에 어떤 사람의 소개로 만났다. 1906년 합자 회사를 세운 그들은 22,400킬로미터를 논스톱 주행하는데 성공하여 롤스로이스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동차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롤스로이스는 특별함을 추구한다. 내부 장식을 모두 수공으로 처리하고 구석구석까지 신경을 쓰며 몇 년이고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생산량도 엄격히 제한한다. 롤스로이스의 생산량은 연간 2천 대 정도로 제너럴 모터스사의 주간 생산량보다 적다.
이 때문에 왕족, 국가 원수, 재산가, 인기인 등이 롤스로이스에 매혹되었다. 이 차를 갖는다는 것은 곧 신화적 인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롤스로이스는 상류사회의 속물근성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롤스로이스는 다음와 같이 자기 차를 광고하였다.
“시속 96km로 달리는 롤스로이스에서 나는 굉음은 전자시계 소리뿐입니다.”
롤스로이스를 소유했던 사람 중에는 특이한 예상 밖의 인물들도 있었다.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레닌은 롤스로이스를 9대 주문하였다. 그러나 소련에는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는 뒷바뀌를 탱크처럼 무한궤도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브레즈네프 서기장도 롤스로이스를 애용하였다.
-라즈니쉬는 인도 출신 명상가로 미국 오리건 주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명상가라면 무소유자의 삶을 살 것 같았지만 그는 롤스로이스를 47대나 가지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365대의 롤스로이스를 사서 날마다 차를 바꿔 타는 것이었지만 미국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하는 바람에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구가 적고 돈은 많은 모나코 왕국은 상대적으로 롤스로이스가 많다. 모나코에는 인구 6.5명당 롤스로이스가 한 대꼴로 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롤스로이스를 한 대 갖고 있었다.
동화출판사 <행복은 따뜻한 마음에 온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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