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위대한 결단: 호텔왕 힐튼

부산갈매기88 2009. 3. 3. 10:51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콘래드 힐튼(Conrad Hilton: 1887~1979)은 ‘호텔 왕’이란 호칭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 꿈은 호텔업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거듭된 사업실패로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던 힐튼에게는 ‘현금장사인 은행업’이 최고의 직업으로 여겨졌다. 가정 형편상 13세부터 돈을 벌기 시작한 그는 파산한 아버지가 살고 있던 집을 여관으로 바꿀 때도 자기가 훗날 호텔왕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주 의회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펼치는 한편 은행가로 정열적인 활약하면서 어느덧 30대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의 나이 32살 때 그의 꿈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은행을 인수하려던 자금으로 호텔을 인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기회는 아주 우연히 시작됐다. 당시 텍사스는 유전개발 붐이 일어나 각지에서 투기꾼들이 몰려들어서 호텔은 투숙객들로 연일 대만원이었다. 힐튼은 그다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호텔 인수의 결단을 내리고 마침 헐값에 나온 호텔을 사기로 했다. 호텔을 인수한 힐튼은 그 사업이 자신의 적성에도 맞다는 것을 발견하고 엄청난 장사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시 호텔은 숙박 시간도 요금도 제각각이었는데 힐튼은 숙박 시간을 8시간으로 정해서 하루에 세 번이나 손님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래도 객실 수가 모자랄 정도로 손님이 몰려들자 사무실도 객실로 개조해서 손님을 받았다.

 

또 호텔 내 여유 공간은 멋있는 쇼윈도로 장식하고 향수·보석 코너 등을 마련해 호텔의 이미지를 높이면서 임대료도 챙겼다. 그는 당시 호텔의 보편적 이미지인 ‘값싸고, 더럽고, 서비스가 나쁘다’ 는 평판을 없애기 위해서 종업원을 철저히 교육시켜 서비스를 개선하고 시트와 배개잇 등 청결한 방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조치들은 대성공을 거두어 그의 호텔은 다른 호텔의 3배나 되는 매상을 올리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자신의 호텔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 나갔고 손님도 점점 더 늘어났다. 호텔왕 힐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929년에 세계적인 대공황이 엄습해 오자 미국의 호텔업계는 된서리를 맞고 미국 전역 호텔업자의 85%가 도산하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힐튼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불굴의 투지가 있었다. 1930년대 후반이 되면서 그토록 심했던 대공황도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힐튼은 헐값이나 다름없는 호텔을 하나하나 매입하기 시작했다. 힐튼은 전 재산을 투자하고, 빚을 내면서까지 호텔을 매입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1940년대에 들어서자 힐튼의 호텔업은 쾌속 항진을 시작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로 진출했고 1943년에는 마침내 뉴욕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23층에 1천79개 객실이 있는 거대한 루스벨트 호텔을 매입하고, 유서 깊은 플라자 호텔도 매입했다.

 

이렇게 수많은 호텔을 손에 거머쥔 힐튼은 1946년 호텔업계로서는 최초로 호텔 주식을 상장하고 1949년에는 힐튼 인터내셔널을 설립해서 전 세계에 250에 달하는 호텔을 세움으로서 호텔업계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힐튼은 날카로운 사업가적 감각과 통찰력으로 역사상 가장 커다란 호텔왕국을 창조하게 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은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들은 실패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중소기업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