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일본 카리스마의 대명사: 오다 노부나가

부산갈매기88 2009. 3. 11. 09:38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는 일본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고 인기 있는 지도자로 꼽힌다. 그는 과감한 결단력과 실행력으로 경쟁자들과 부하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일본 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일본 최고의 영웅이다.

 

흔히 일본의 CEO들은 실질적으로 일본 열도를 통일하고 250년간의 에도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후계자 유형 1위로 선택하는 한편 노부나가를 최고경영자 1위로 꼽는다고 한다. 그것은 노부나가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와 결단력에서 나오는 카리스마 때문일 것이다.

 

당시 일본은 100여 년간 전란이 지속된 전국시대였다. 다이묘(大名:봉건영주)의 아들로 태어난 노부나가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8살의 나이에 다이묘가 된 후, 새로운 정책들을 재빨리 개발 시행하면서 일본 개혁의 선봉이 돼 오랜 봉건전쟁을 종식시켰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하를 통일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녀 주위로부터 ‘오와리의 얼간이’로 불리기도 했지만, 천하포무(天下布武, 천하에 무위를 떨치다)의 기상으로 일본 근세의 기반을 마련한 혁신적인 지도자였다. 1560년, 노부나가는 불과 3천의 군사로 열 배가 넘는 당대 최고 실력자인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의 대군을 무찌르고 천하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유명한 오케하자마(桶狹間)전투인데, 그는 누구도 상상도 못하는 의표를 찌르는 전술로서 상대를 제압했다. 그는 근대병기라 할 수 있는 조총을 전투에서 가장 먼저 효과적으로 사용했으며,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스물한 자(약 6.3m)짜리 장병창을 만들어 군의 중심에 뒀다.

 

당시 창은 열두 자에서 열다섯 자가 표준이었는데, 장병창은 훈련이 부족한 보병이더라도 곧바로 전투에 활용할 수 있었다. 먼저 조총으로 적을 위협해 말을 쓰러뜨린 후 장병창을 든 보병이 돌격하는 식으로 조총과 병용하면 효과적으로 적을 쓰러뜨려 여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는 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도로 정비를 하지 않았던 다른 다이묘들과는 달리, 오히려 도로를 정비하고 다리를 만들어서 보다 빨리 진군할 수 있도록 했다. 노부나가의 전략과 전술이 빛난 것은 나가시노(長篠)전투였다.

 

이 전투는 당대 최강이라고 소문났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기마대를 괴멸시킨 전투다. 그는 최강의 기마군단과 정면에서 맞붙으면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고심한 끝에 마방책(馬房柵, 말을 막는 울타리)를 세우고 삼단 철포부대를 만들어 그 너머로 조총을 쏘는 작전을 짜내 결국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그는 전쟁만을 한 무장이 아니었다. 그는 신흥 상인계급과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을 포용하고 경제적 토대를 확고히 다짐으로써 지배권을 확립했다. 노부나가는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고, 전공을 세운 부하들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해줬다.

 

또한 많은 개혁을 단행했는데 구체제, 구관습의 타파를 위해 화폐 주조, 도로ㆍ교량의 정비, 관소(關所: 검문소)의 폐지 등 혁신적인 정책으로 일본의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하는 창조적 전환기를 열었다. 그러나 그는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부하의 습격을 받아 스스로 할복함으로써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천하통일의 위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계승됐다.

 

<중소기업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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