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금정산 고당봉(호포-하늘릿지-고당봉-북문-동문)

부산갈매기88 2012. 10. 30. 16:59

 *신행일시: 2012. 10. 20일(토) 흐림

 

*누구랑: 부산 백산산악회 회원 10명과 함께

*산행코스: 지하철 2호선 호포역-희망공원-하늘릿지-고당봉-북문-원효봉-동문(산행시간 5시간, 점심 35분, 휴식 30여 분, 순수하게 걸은 시간 4시간 정도)

 

*산행 Tip: 부산 금정산 코스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는 하지만 조금 힘이 드는 코스이다. 그러나 고당봉으로 오르는 코스 중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고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설악산 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부산시내 산 중에서 이런 데가 있었나!'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코스가 이곳이다. 정상 아래의 억새가 피어 있는 곳에서의 식사는 건강한 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보너스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평탄한 길 속에서 안정되게 걷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산악인이라면 조금 다르다. 조금 고생이 되고 위험이 따르더라도 뭔가 색다른 길, 또 다른 코스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그 자신은 모험적인 요소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서 모험을 하지 않고 입 안으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안정된 샐리리맨이거나 공무원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산행을 한다는 것은 좀더 다른 경치와 풍경, 그리고 다른 인내와 고통을 감내하면서 새로운 희열을 느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자리에 머물러 똑같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혼자보다는 새로운 친구나 동료를 통해서 삶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의미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남이 살아 온 삶에 관심을 맞추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산에서 자신의 묵은 찌꺼기를 분출해 보려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고,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에너지를 보충받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산행을 한다는 것은 모두가 한 목표를 향해서 달려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함께 모여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경치를 노래하고, 세상살아 가는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져 간다는 사실이다. 도심 속에서는 자신의 가진 것을 자랑한다. 그리고 배운 것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산에서 배우는 것은 그 어떤 물욕이나 탐욕, 소유욕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이다. 대자연의 순리에 엎드리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순수하지만 순수하지 않은 것들이 산 속에서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깨우쳐 간다는 사실이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버리는 연습을 한다.

 

  이 코스는 설악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비경을 가지고 있다. 초입에서 1시간여 동안 완만하고 워밍업을 할만 하고, 임도를 지나 서서히 비탈길을 오르면서 외줄타기를 하는 코스도 나오고, 전망 바위에서 펼쳐지는 숨막히는 절경이 우리 삶의 현 주소를 생각나게 해 준다. 그리고 능선을 향해 정상까지는 1시간 반 정도 좀더 가파르고 바위 틈바구니를 지나가면서 바위가 만들어내는 절경과 주위 경관이 물들어 가는 풍경, 그리고 스쳐가야 하는 인생길이라면 그 틈바구니 사이로 때로는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자연에 순종하는 지혜도 배운다. 머리 숙이고 엎드리는 지혜도 배운다.

 

  하늘릿지에서 펼쳐지는 것은 여기가 설악산인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하늘릿지를 보려면 약간의 모험을 해야 한다. 인생 나그네길에 약간의 모험과 땀 흘리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배운다. 그 암봉 위에 올라서면 세상 속에서의 모든 번뇌는 사라지고, 자연이 내 품에 안긴다. 어쩌면 어머니 품속 같기도 하다. 왜 오래동안 방황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인생의 해답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수학문제보다 힘겨웠던 인생의 문제에 해답이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생각나게 해 준다. 이 세상에 지식은 차고 넘쳐도 진정 고개 숙일만한 스승은 드물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 그 대스승과 동행해 보는 시간인 것이다. 대자연의 스승에게서 겸손과 인내를 배우는 시간인 것이다.

 

  이어서 고당봉 아래 일행과 함께 으악새가 가을길 떠나는 펑퍼짐한 자리에 앉아 식사교제를 한다. 세상에서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가 없다. 혼자서 쓸쓸히 먹는다면 몸에 독이 쌓일 수도 있지만, 마음과 영혼이 맑은 사람끼리 밝은 태양 아래 함께 친교를 나누는 재미는 인생에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 더해지는 것이기에 엔돌핀이 샘물처럼 팍팍 솟아나는 것이다. 어쩌면 일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시간이 이 시간인지도 모른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산해진미보다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끼리의 오붓한 식사, 싸 가지고 온 도시락과 반찬은 도심지의 레스토랑에 비해 턱없이 초라할지 모르지만 자연이 들려주는 숨소리와 일행의 대화는 1백만불 짜리의 가치가 있는 식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산에서 걷는다는 것은 나와 나 자신과의 싸움이요, 내 발자취를 남기고 가려는데 초점이 모아지지만, 식사시간은 내 삶의 한 부분을 내려놓고 이웃의 삶에 귀 기울이는 시간인 것이다.

 

  이제 정상 정복의 아주 잠깐의 희열을 맛본다. 한 컷의 사진이 그 정상의 모습을 남겨줄 뿐이다. 어디를 가든지 그 정상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남긴다. 세상의 부자라도 부럽지 않는 순간이다. 부자라고 해서 이 정상의 기쁨을 다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누구나 다 맛볼 수 있는 즐거움도 아니다. 건강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순간인 것이다. 우리는 건강하기에 그 기쁨을 때론 잊으며 산다. 나는 2년 여 몸이 안 좋아 나 혼자 홀로 부산근교의 산행을 했다. 때론 깊은 산에서 멧돼지를 맞딱드리기도 했고, 숨 막히는 가슴을 안고 홀로 산행하기를 수십 차례 했으며, 홀로 안개 속에서 땀 흘리며 건강한 몸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을 품은 적도 있었다. 그 고통의 긴 터널을 극복하고 건강이 회복되어 백산산악회에 동참을 할 수 있어 참 기쁘다. 고통울 맛본 자만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늘 그러하듯 최고의 꼭대기를 지나면 내려가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산의 절경이나 억새가 손짓하는 풍광을 1시간 반 남짓 내려가면서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억새가 피고지고, 수많은 인파가 스쳐 지나갈 때 내가 왔던 길을 다른 사람은 가고 있음을 안다. 내려다 보는 소나무 한 그루, 돌 한 개, 언덕배기의 정자 하나도 다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고 가는 하루인 것 같다. 

 

  원효봉을 지나서 일행과 함께 또 다른 일행을 기다리며 동문에서 작별을 한다. 모두 각자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동문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흘어지기로 했다. 일행 중 몇 사람은 화명동으로, 또 몇 사람은 온천장으로 걸어 내려가고, 나와 두 사람은 또 다른 시간의 여행을 위해 버스를 타고 온천장으로 왔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의 즐거운 하루였다. 나 홀로 산행을 했을 때보다 기쁨이 몇 배가 커진 것 같다. 물론 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없어지긴 했으나 세상을 공유한 시간의 값어치는 한층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하루였다. 1미터 이내의 자신의 영역에 낯선 사람이 들어온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모든 것은 죄다 자연이 친구가 되어 주었기에 그렇게 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목표와 목적, 그리고 방향은 다를 수 있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상하는데, 그리고  마음을 열었다는데 큰 의의를 두면서 오늘도 집으로 간다. 나는 내 아닌 타인에게 배려하고 겸손해지는 것을 대자연에서 배우고 돌아간다.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모두 욕심을 버렸기에, 그리고 나를 버렸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한 열 분의 일행에게 감사드린다. 함께 한 일행이 보다 행복했으면 바란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