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지리산 뱀사골-화개재-삼도봉-노루목-임걸령-피아골대피소-피아골 직전마을 산행

부산갈매기88 2012. 11. 5. 16:31

*산행일시: 2012. 11. 03(토) 맑음

*누구랑: 부산백산 산악회 회원 46명 중 B코스 희망자 9명과 함께

 

*산행코스: 지리산 뱀사골 반선 도착(11:43)-반선교 출발(11:55)-와운교(12:11)-화개재 대피소(14:27)/점심식사 25분)-화개재(14:58)-삼도봉(15:25)-노루목(15:44)-임걸령(16:08)-피아골대피소(17:17)-구계포 계곡(17:42)-18:35(피아골 직전마을)

 

*산행거리: 18.5km

*산행시간: 6시간 40분/ 점심 및 휴식시간 약 40분

              순수한 도보 시간 약 6시간 정도

 

*산행 tip:

  부산 출발은 대체로 도로도 덜 막힌 관계로 순조로웠다. 그런데 거창 부근에 와서 한 순간 버스기사의 진행방향 착오에 의해 50여 분을 돌고 돌았다. 자주 함께 하던 그 기사분이 아니었다. 출발부터 마음 한 구석에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게다가 군데군데 도로 공사로 길은 막혀 조금씩 지체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오늘의 산행길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갈 길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갈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런 상황 하에서 뱀사골에서 삼도봉을 거쳐 피아골로 하산하는 길은 포기하고 성삼재, 노고단 코스를 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낮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산행대장님은 예정대로 진행을 하니 뱀사골로 갈 사람은 반선에서 내리라고 했다. 처음부터 뱀사골 코스는 시간상으로 무리라고 했으면 성삼재 코스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뱀사골 코스는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꼭 가보고 싶었던 터라 따라 나섰다.

 

  뱀사골 반선에 내린 사람은 즐거운 산행님, 흔적님, 윤슬님, 한사랑님, 그리고 나머지 네 명으로 나를 포함하여 9명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일단 장비를 꾸리며 화장실 옆에 붉게 물들어 있는 단풍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고조되었다. 반선교에서 11시 55분 출발했다. 거기서 와운교까지 약 15분 정도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었다. 수많은 인파에 파묻혀 마음이 어수선했다. 즐거운 산행님을 포함한 7명은 날다람쥐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선두와 나를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는 윤슬님은 내가 따라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주 돌아보며 잠시 기다려주며 배려해주었다.

 

  나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계곡의 바위와 폭포, 물소리들이 나의 걸음을 붙들어 둔다. 물은 맑고 자그마한 폭포는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세상의 삶에 지친 나를 소리 내어 봐 달란다. 한 컷을 찍으려고 계곡을 바라보면 선두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지만, 어찌 내 눈에만 담아두고 것으로 만족할 수가 있겠는가.

 

    뱀사골 산행은 계곡 산행으로 뱀사골 대피소까지 아주 완만하여 초보자라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이 코스는 계곡 산행이라 길은 바닥이 돌 투성의 너덜이다. 그러하기에 잰 걸음으로 달리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기본 체력이 있다면 화개재까지는 무난하다. 50여 분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앞서 간 일행 5명이 길가 벤치에 앉아 깍은 감, 귤, 사탕, 막걸리 등을 꺼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을 따라가려니 과속으로 달린 자동차의 타이어가 탄 냄새가 나듯 내 입에서 단 내가 났다. 잠깐 한 숨을 돌려 본다. 그러나 또 다시 그 일행들은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간간히 윤슬님은 내가 오는지 뒤를 돌아다본다. 5~6년 전에 왔던 기억을 되살려 앞에 전개될 지형에 대해서 나에게 코멘트를 해준다. 옛날의 추억담이 나에게는 조금 위안이 된다. 그리고 또 새로운 마음의 다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드디어 반선교에서 출발해서 화개교까지의 15번째 다리를 건너서 뱀사골 대피소에 이르니 앞서 간 일행이 먼저 와 식탁보를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반선교에서 출발하여 2시간 반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밤 때를 넘겨서 이제 배고픈 느낌도 없다. 그러나 인생의 즐거움 중에서 먹는 즐거움도 아주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다. 갈 길이 먼 관계로 20여 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기가 바쁘게 계단을 올라가버린다. 그런데 대피소에서 화개재까지 10여 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배를 가득 채우고 나무계단을 올라가려니 상당히 힘이 든다. 화개재에 올라서니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돌과 물, 나무, 그리고 다른 사람의 뒤꼭지만 쳐다보며 걷다가 이제 파란 하늘도 제대로 보이고, 다른 능선도 볼 수 있어 가슴이 트인다. 가을은 저만치 가버린 탓에 나무의 이파리는 떨어져버려 나무들은 겨울을 재촉하고 있는 것 같았다. 700~800년 전부터 이 고개로 영호남의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위해 오르내렸다고 하니 이 산길이 예사롭지 않게 생각되었다. 그 역사의 현장을 오늘 나는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가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는 미래가 없기에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수많은 산악인들은 대자연의 어머니의 품에서 위로를 받고 쉼을 얻기 위해서 달려간다. 인생의 절반을 넘어서고 나면 관심의 대상은 사람에게서 자연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삶의 나그네 길에 사람들은 인간과 사물에게서 너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탓으로 중년을 넘어서면 으레히 대자연에게서 위안을 받고자 한다. 이제 그 눈은 자연을 향하고 귀는 자연의 눕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입은 닫혀진다. 왜 닫혀질까? 살아오는 동안 귀가 두 개이고, 입은 한 개라는 사실을 잊고 하나님이 만든 자연의 순리를 그슬리며 살아왔다. 이제 절반의 인생을 넘길 때에야 비로소 깨달아진 것이다.

 

  화개재(1,315m)에서 삼도봉(1,434m)으로 오르는 700여 개의 나무계단은 삶의 한계를 초인내하게 만든다. 오늘의 코스 중 최고봉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길. 공사하는 사람들이 적어 두었는지는 몰라도 나무계단 정면으로 680, 620....400 이라는 숫자가 나타난다. 차라리 그 숫자를 모른 채 오른다면 체념을 하고 가련만, 눈앞에 또렷이 숫자가 나타날 때마다 내 다리는 전율을 한다. 아직도 많은 계단이 남았단 말인가? 우리 인생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산다면 오늘 빈둥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은 내일이라는 시간을 수수께끼로 남겨 두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오늘이란 시간에 붙잡혀 오늘이 마지막이란 듯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합쳐지는 지점이라는 삼도봉(1,434m)에 오르니 앞서 간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시도에서 온 산악인들도 표지석을 놓고 자리다툼이 한창이다. 잠시 발길을 멈추어 단체사진 한 컷을 했다. 시간을 보니 지정거릴 여유가 없다. 노루목(1,550m)을 지나 임걸령의 약수터에서 약수 한 사발을 들이키고, 피아골로 하산하는 마지막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피아골로 내려서는 길은 뱀사골로 오를 때와는 아주 딴판으로 경사가 가파른 탓에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전에 피아골의 직전마을까지 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초조해 온다. A코스의 일행들은 삼홍소를 지나 하산 중이라는 연락이 있어, 그 일행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산하는 나무들 위해 벌써 겨우살이들이 둥지를 틀고 앉았다. 도시 인근에서 보기 힘든 풍경에 목을 빼고 바라본다.

 

  피아골 대피소까지 어렵사리 내려 왔는데, 서서히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어 초조해진다. 도착 시간을 예상해 보니 대략 7시 정도 되지 않을까 하고 한사랑님이 계산을 해 본다. 어두워져 이제 주위의 경치 구경을 하는 것에 맘을 비운지 오래다. 땅거미가 진 너덜길을 걸어 내려오는 도중 발을 헛디뎌 주저앉기를 여러 차례 저녁 6시경 삼홍소 근처에 오니, 더 이상 플래시를 켜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가 없다. 한사랑님과 오늘 처음 산행에 참가한 일행이 플래시를 켜서 2인 1조가 되어 돌길을 걸어 내려간다. 낯선 사람들이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인간관계의 거리에 대해서 에드워드 홀은 친밀한 거리(46cm)와 개인적 거리(46cm~1.2m)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 일행은 그냥 말이 없어도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다. 위기가 닥칠 때 그 극복을 위해 더 친숙해지고 밀접해져 가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고기를 씹어야 맛이 나고, 진정한 친구의 존재는 위기와 어려움이 올 때에 그 값어치가 드러나는 법이다.

 

    간간히 A팀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어디 쯤 오고 있는지를. 마을에서 오랜 시간 우리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못했다. 어쨌든 우리 넷은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 달려 갔다.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마을을 오가는 셔틀버스의 불빛인가 조금 전 불빛이 보였는데 가보니 어둔 침묵의 밤만 기다리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20여 분을 달려가니 직전마을의 불빛이 나타났다. 마을을 지나 마을 입구의 넓은 광장에 가니 버스와 함께 버스 앞에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함성이 터졌다. 버스에 오른 우리는 미안함에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코스는 오래 전부터 기회가 있으면 가보고 싶었다. 그 기회가 있었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기 전 인터넷을 뒤져서 갔다 온 시간을 체크해보니 이 코스는 적어도 휴식을 포함하여 7~8시간 이상은 걸렸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6시간 40분 정도 걸렸으니 꼴찌로 늘상 다니는 나에게 정말 힘든 도전의 하루였다. 먼저 기다린 A코스 일행 여러분과 B코스 일행 여러분, 그 중에서도 윤슬님, 한사랑님, 즐거운 산행님, 흔적님, 또 처음 오신 분에게 함께 해주셔서 정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세상은 혼자 보다는 함께 했을 때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다음 산행이 기대된다. 그대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