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죽을 힘을 다해서

부산갈매기88 2009. 7. 31. 09:37

그는 목포에서 유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열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급기야 기울었다. 열세 살 때 어머니와 상경한 아이는 학교에선 친구들 머리를 깍아 주며 용돈을 벌었고 방학 때는 청계천 앰프 공장에 나갔다. 어머니는 식모살이를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만 집에 왔다.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그의 일이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에서 버려진 배춧잎을 가져다 먹는 일은 다반사였다.

 

한양공고 야간반에 진학한 뒤에도 신문배달, 파출소 사환, 공장 일 등 아르바이트는 계속되었다. 어머니 대신 생계를 책임지려는 다급한 마음으로 특전사에 지원했다. 공수부대에 가면 낙하산을 탈 때마다 1만원을 준다는 공장을 선배의 말을 들어서였다. 1982년부터 5년간 복무하며 어머니의 생활비와 동생 학비를 댔다. 그리고 결혼도 했다.

 

공장생활을 하며 쌓은 노하우와 인맥으로 자신감이 생긴 그는 1990년 이레전자를 창업했다. 살림집인 연립주택 반지하 방을 공장삼아 전선을 단자에 연결하는 일을 하청 받아 했다. 구리선 부스러기가 방바닥에 기어다니는 어린 남매의 살갗을 파고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되겠다 싶어 500만 원을 선배로부터 빌려 월세로 지하 5평 창고를 얻어 공장으로 개조했다.

 

부부가 밤늦도록 일했지만 느는 것은 빚뿐이었다. 지칠 때로 지친 그는 한강 둔치로 나갔다.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아내와 두 자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주 초라해 보였다. 고생하면서 살아 온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쪽 발을 강물에 집어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근처 자동차에서 경적이 울리더니 사람들이 서로 인하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렸다.

 

그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강물에서 발을 빼냈다.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에 자실을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힘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덤핑 공세가 시작되자 하청 일은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새 정보의 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해외 전자 박람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실감했다.

 

1993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전자 박람회에 들렀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백만 원 하는 휴대폰이 단돈 1마르크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휴대폰 제작이 이레전자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충전기를 통해 성공을 거두었다. 2001년에는 월 10만 대의 생산 설비를 갖추고 CDMA 휴대폰도 자체 생산했다.

 

라스베이거스 전자 박람회에서 본 벽걸이 TV는 그대로 새로운 도전의지를 자극했다. 전선가공업으로 출발한 이레전자는 디지털 TV 전문업체로 변신했다. 한때 자살을 결심했던 그는 1500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이 되었다. 그는 이레 전사자의 정문식 사장이다.

예상치 못한 시련과 난관을 대처하는 모습에서 사람됨의 깊이와 넓이가 드러나는 법이다. 희망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힘은 희망의 힘이다. 머릿속에 희망을 좀먹는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한다.

 

행복은 고통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삶에 의미가 있다면 인간은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의미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리더북스 <절대긍정으로 산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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