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백산산악회 제 266차 정기산행: 포항 내연산 향로봉 산행기 ◈(2015. 8. 22)

부산갈매기88 2015. 8. 28. 09:49

 

◎산행지: 포항 향로봉(930m)

★산행일시: 2015. 8. 22. 토. 흐림

 

☢산행 참석자: 부산백산산악회원 및 게스트 포함 42명(동무, 스마트, 솔뫼, 혜영, 종현, 피네, 청림, 와석, 한사랑, 태영, 갈바람, 붉은 노을, 숙이, 행운이, 옥여사, song이, 슬로우, (슬로우)퀵, 동방, 은수, 효리, 송향, 수정, 가연, 현진, 은방울, 새콤달콤, 팅커벨, 야초, 대봉, 성룡, 이기주, 윤호, 솔사랑, 산울림, 오뚜기, 운해, 와니, 부산갈매기 외)

 

 

●산행 코스:

(A)향로교~향로봉(930m)~시명리~은폭포~관음폭포~연산폭포~상생폭포~보경사~주차장

(B)향로교~내연산 삼지봉(710m)~은폭포~관음폭포~연산폭포~상생폭포~보경사~주차장

 

 

◔시간대별 산행코스(A코스):

10:49 향로교 도착

10:58 산행시작

12:28 삼지봉/향로봉 갈림길

12:40 향로봉(930m)(중식 30분)

14:25 시명리 이정표(향로봉 1.7km/보경사 6.2km)

14:32 시명폭포

15:20 이정표 갈림길(보경사4.1km/시명리 2.1km/향로봉3.8km)

15:41 은폭포

16:18 관음폭포

16:25 연산폭포

16:34 무풍폭포

16:48 상생폭포(알탕 30분)

17:45 보경사

18:00 주차장  

 

 

★산행 시간(A코스): 7시간 12분(중식 30분, 기타 휴식 32분, 알탕 30분>

                            <순수 산행시간: 5시간 40분>

◍산행거리: (A조) 12.40km

◎교통편: 신부산 고속투어 관광버스

 

 

▶산행 tip: 이번 백산산악회의 266차 정기산행은 포항 향로봉과 청하골 (보경사 계곡)을 찾아간다. 이곳은 생각보다 오지 중의 오지다. 그래서 자연 보존이 잘 되어 있고, 계곡의 아름다움을 자연 상태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향로교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향로봉까지는 육산이라 1시간 40분 밋밋한 산행을 한다. 그러나 고메이등을 내려선 후 시명리에서 부터는 숨막히는 계곡의 풍광이 전개된다. 그 계곡 폭포의 감동은 연산폭포와 관우폭포에서 극에 도달하게 된다. 2시간 남짓 계곡산행은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치유시켜 주는 아름다운 시간이 된다. 그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을 뗄 수가 없고 몸에 전율이 인다. 왜 그토록 때 묻지 않은 이곳을 찾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 계곡물이 학 날개처럼 하얗게 속살을 출렁이며 아래로 내리꽂히는 폭포의 장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전체산행은 7시간여 12.4km로 그렇게 피곤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알탕을 한 탓으로.

 

 

▶향로봉을 향해서

하옥리의 향로교 부근에는 깎아지른 암벽이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그 암벽 틈바구니에 나무와 풀들이 엉겨 붙어 살고 있다. 그 숙명의 공존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나게 한다. 개울물은 어찌 그리 맑은지. 피서 온 사람들은 여기저기 차를 내팽개쳐 두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간신히 향로교 부근의 한뼘 더 있는 공터에서 하차를 한다. 향로봉 3.7km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내연산 삼지봉까지 6.0km라고 한다. 또 여기가 해발 300미터라고 하니 향로봉(930m)까지는 얼마나 땀을 흘려야 하는지를 가늠해 본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앞길을 예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바투 앞도 예상치 못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하차하자마자 간이 화장실을 다녀오고, 분주히 몸을 추슬러본다. 뭐 그렇게 후다닥 해 보았자 10여 분은 걸린다. 준비운동을 해서 근육의 긴장을 좀 풀어 보라고 해도 건성이다. 마음은 이미 향로봉 꼭대기에 가 있기에. 공덕비가 있는 빈터에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본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이 순간에 함께 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허투루 하기가 뭣하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가풀막이 시작된다. 가풀막이 세다 보니 뱀 똬리를 틀어 놓은 듯하다. 그 뱀 대가리를 발로 지근지근 꾹꾹 눌러대듯 발을 뗀다. 고개를 소곳이 숙여가면서. 갑자기 입에서 단내가 확 올라온다. 머리 또한 무거워져 온다. 허벅지에 묵직함이 전해져 온다. 서서히 몸은 화로 위에 올려놓은 양푼이 마냥 달구어진다. 머리띠에서 벌써 땀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진다. 바람은 길손의 마음을 외면하고 손사래를 친다. 피난민의 행렬처럼 20여분을 오르니 어느덧 경사가 조금 완만해진다. 이제 주위를 바라볼 정도의 여유도 생긴다.

 

 

숨 호흡을 하며 능선길을 가노라니 머리를 동쪽으로 숙이고 있는 노송을 만난다. 왜 그쪽으로 소나무 전체가 숙여져 있을까. 세찬 태풍에 한 방을 먹은 것인가. 아님 참나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한 것인가. 속 좁은 우리가 그 뜻을 어찌 알겠냐 만은 홀로 그 소나무 위쪽만 대가리를 숙인 연유가 알고 싶어진다. 오늘은 그 된비알 탓에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처음부터 나기 시작한다. 운해님을 비롯한 앞서 가던 선두조가 가능한 한 보폭을 줄여 본다. 이제 완만한 능선길이라 휘파람 소리가 날만도 하다. 1시간 15분여를 오르니 참나무 숲 사이로 그늘사초들이 하늘거리며 길손을 맞이한다. 파란 카펫이 여기저기 싱그럽게 깔려 있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여전히 앞서 가던 선두조들은 우리가 다가서면 그 자리를 물려주고 달려가기 바쁘다.

 

 

삼지봉과 향로봉 갈림길 가기 조금 전 길옆에는 상수리나무의 밑둥치가 세월에 삭고 삭아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상수리나무는 윗부분은 싱싱한 것으로 보아 죄다 위로 영양분을 다 올려 주었다 보다. 자신의 몸뚱아리를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과 가지에 모두 주다 보니 밑둥치는 썩고 썩어서 빈 둥치가 된 것이다. 어쩌면 어미의 마음이나 그 상수리나무도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마음이리라.

 

초입에서 삼지봉/향로봉 갈림길까지 1시간 반을 달려왔다. 거기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향로봉까지 0.7km라는 이정표의 안내에 표정이 밝아진다. 그런데 향로봉까지 안부가 12개나 된다. 12개의 안부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봉우리를 껴안고 있다는 말이다. 향로교 지점과 향로봉의 표고차가 630미터이니까 제법 숨차게 오른 셈이다. 다행히 구름이 많이 끼여 있어서 산행하기에 그나마 좋은 여건이다. 아주 약한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금상첨화일 텐데. 밋밋한 육산을 오른다는 것이 황천길 고갯마루에 올라서 듯 힘겹다. 그러나 산우와 함께 하는 능선길은 어릴 적 엄마의 손때 묻은 돈을 받아 쥐고 읍내로 사탕 사러 가는 발걸음과 같다. 그냥 신바람이 난다. 여기저기 웃음의 메아리꽃이 피면 발걸음은 날렵해진다. 들머리에서 향로봉까지 1시간 40분이 걸렸다. 정상 부근은 정비가 되어 있어 너른 공간의 중간에 키 높이의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정상석이 주는 의미는 뿌듯함과 추억 만들기다. 정상을 정복했으니 가슴 한켠에 뿌듯함이 자리 잡고, 또 한편으로는 여기 왔다간 흔적을 가슴 속에 새겨두어야 하는 일. 이 순간을 위해 죄다 사진에 담는다. 행복한 이 순간이 도망칠까봐 행복의 그물을 내리 덮는다. 이 아름다운 산우와 함께. 먼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었지’하는 단상을 가질 때도 있을 것이다.

 

 

▶천상의 식사 ~고메이등을 타고

점심식사 자리는 정상이 여의치 않아서 100여 미터 되돌아 내려와 빈터에서 하게 된다. 선두조가 식탁보를 펼쳐 식사를 하려는데 후미조가 들이닥친다. 일단 후미조들은 정상에서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여기로 되돌아온 것이다. 서너 그룹으로 나누어 앉아 식사를 한다. 2시간 가까이 땀을 바짝 흘린 후의 식사. 중간에 행동식을 먹어서 입맛이 덜 한 사람도 있겠지만, 함께 어깨를 낮추어 눈높이로 바라본다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 오르면서 지나간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이 순간에 잠시 우산을 접듯 접는다. 이 세상의 진짜배기 고민은 4%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쓰잘데기 없는 고민 아닌 고민을 이 좋은 곳에 와서도 가슴 한켠에 잠재우고 있으니. 그 잡동사니의 생각은 도시락을 펼쳐 함께 밥을 입에 넣는 순간 사라진다. 주위의 일행 사이에 오가는 찬통 위의 반찬과 토종 요굴트 한 순배의 정감에 가슴은 라면 냄비처럼 보글거린다. 여기까지 고생한 기억은 어느덧 잠자리 날개에 실어 보낸다. 누군가 골고루 나누어 줄 거라고 가져온 채소가 쌉싸래한 세상맛을 느끼게 하면서 입맛을 돋운다. 거기에 누군가 한 마디 던지는 농담이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듯 분위기가 출렁거린다. 이래서 한 자리에 앉으면 삶의 에너지가 더 증폭되는 것 같다.

 

 

30분여의 식사가 끝나면 아무 말이 없어도 찬통 닫는 소리가 신호가 되어 주섬주섬 배낭을 챙긴다. 그리고 여자 회원들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 자투리 시간에도 여자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다. 팔순이 넘어도 화장을 하고 거울에 눈을 떼지 않는 우리 엄마를 보더라도 젊으나 늙으나 그 본심은 똑같다고 본다. 그 예술의 경지를 누가 말하랴. 남자가 여자의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그렇게 습관적으로 하는 모습이지만, 얼굴 아래 위, 좌우로 오가는 재빠른 손길에 경이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들은 기껏해야 스킨에 로션을 한두 번 찍어 얼굴에 묻혀서 쓱싹 하면 끝인데, 여자들은 그게 아니다. 또 눈과 코, 입술에 더 심혈 아니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화룡점정의 입술 마무리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행여 실개천 흐르듯 립스틱 자욱이 옆으로 흘러가지나 않았을까 싶어서. 그리고 그 아래 입술에 묻힌 립스틱이 고루 퍼지게 위아래의 입술을 안으로 접어서 밖으로 빼내어 오물거리면 여자의 변장은 대부분 끝이 난다.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은 손거울로 얼굴의 윤곽을 훑어보는 것.

 

 

배낭을 챙겨 정상 부근으로 다시 간다. 단체 인증샷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개인 사진도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정상석에 기대어 찍는다. 무엇보다 단체가 한 무리가 되어 함박꽃을 피울 때가 정상 정복의 행복한 시간의 정점이 된다. 이제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 바로 아래의 빈터에는 타산악회에서 온 일행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고메이등을 50분 정도 내려오니 시명리 이정표(향로봉 1.7km/보경사 6.2km)를 만나게 된다. 고메이등은 그렇게 까탈스러운 하산로는 아니지만, 비탈길인 만큼 주의를 요한다. 시명리 이정표에서 메마른 개여울을 지나 보경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시명리 개여울에서 갑자기 오름길이라 내심 근심을 하지만, 조금 오르면 보경사 가는 길은 계곡을 끼고 산허리를 따라서 가게 된다. 5~6분 가게 되면 시명폭포 안내판이 나온다. 시명폭포 아래로 내려가 보았으면 하지만, 운해님과 몇 사람만 따라가고 나머지 일행은 줄곧 산허리를 따라내려 간다.

 

 

▶인기명산 23위가 이 12폭포 계곡 때문이라고 하니....

사실 향로봉(930m)이 삼지봉(710m)보다 220m 더 높지만 내연산의 주봉은 삼지봉(710m)이다. 산림청 100대 명산 23위에 올라 있는 내연산은 무엇보다 청하골이라는 부르는 12폭포의 계곡 때문에 여름 산행지로 최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내연산은 원래 종남산(終南山)이라 불리다가, 신라 진성여왕이 이 산에서 견훤의 난을 피한 뒤에 내연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내연(內延), '안으로 길게 끌어 들인다'는 이름처럼 문수봉~삼지봉~향로봉~매봉~삿갓봉~천령산 등이 말발굽형 산세를 이루고, 그 한가운데 형성된 30여 리 길고 깊은 골짜기가 청하골, 12폭포골, 내연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보경사계곡이다.

 

 

보경사 6.1km라는 이정표에서 10분 여 진행을 하게 되면 실폭포 간판이 보이지만 진짜 실폭포는 거기서 250미터를 더 계곡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잠시 길옆에서 50여 미터 들어간 계곡의 짝퉁 실폭포 하나를 만나게 된다. 칠순의 노인네의 오줌발처럼 세차지 않고 찔찔 흐르는 실폭포 앞에서 앞서간 일행들이 포즈를 잡고 있다. 깊지 않은 소[沼]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고 계곡은 안으로 깊게 음산하게 파여 있다. 잠시 더위를 식히고 망중한이 되어 본다. 뜨거워진 가슴을 계곡 안에서 나오는 한기로 식힌다. 마음이 살짝 가라앉는다. 가을 하늘의 포동포동한 양털 구름을 보면 기분이 조금 좋아지듯.

 

 

거기서 돌아 나오니 개울에 앞서간 일행이 족욕을 하고 양말을 신고 있다. 머리를 감은 사람도 있다. 그것을 보니 시원함이 전해 온다. 이걸 두고 대리만족이라고 하는 건가. 또 10분 채 가지 않아 이번에는 커다란 나무 밑둥치가 50대 여인의 엉덩이를 닮은꼴을 하고 길옆에 나부러져 있다. 영락없는 꼬락서니가 엉덩이를 까놓은 것이 어찌 그리 닮았는지 ‘허허~’하고 웃음이 저절로 난다. 저네들이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오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 생명을 위로 뻗어 올려 살아남으려는 의지만이 있지 않았을까. 그 나무 앞에서 웃음과 인생의 한 수를 배우고 간다.

 

 

거기서 5분 정도 가게 되면 너덜겅이 나온다. 그 비탈에 빼곡히 쌓여있는 시커먼 너덜을 바라보면 영화관의 스크린이 갑자기 밤으로 바뀐 느낌이다. 녹색의 장면이 뚝 끊긴 검정색 너덜의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한 장의 추억을 담는다. 그리고 누군가 배낭에서 꺼낸 과일에 기분이 밝아진다. 어울림과 소통의 미학이 잠시 분위기를 밝게 한다. 목의 땀도 한 번 훔쳐본다. 머리띠에 가득 고인 땀을 한 번 질끈 짜낸다. 오늘도 벌써 세 번 정도 머리띠의 땀을 짜내었다. 구름이 끼여 있어서 날씨가 조금 시원하긴 하나 아직 가을은 저만큼 멀리 있는 듯하다.

 

시명리에서 2.1km인 지점에서 개울을 만나게 된다. 시명리에서 50여 분을 온 것이다. 개울에는 앞서간 일행들이 옷을 입은 채로 개울에 들어갔는지 몸이 젖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고 목을 축이듯 일행들은 뭔가 일을 치른 것이다. 그 맑은 개울이 여인의 치마폭이라도 된 듯 감싸 안은 듯하다. 몸에서 나는 퀴퀴한 신 냄새를 가시고 싶었는지도. 본능의 발로이던가. 몸의 흐느낌이던가. 가슴의 울부짖음이던가. 이 무더위가 부른 것인가.

 

 

이제 개울에서 5분을 지나니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살짝 올라서면 30여 미터의 출렁다리가 있다. 벌써 그 출렁다리에 앞서간 일행들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비명만 지르고 있다. 구름다리를 먼저 간 일행이 뒤이어 오는 여자 일행을 보고 발을 구르고 있기에. 구름다리는 시소처럼 출렁거린다. 어쩌면 흔들의자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소풍을 가서 이런 곤욕을 치른 일이 있거나 그 옛날 부산 송도의 구름다리에서 호되게 가슴 졸인 기억이 있는 여자 회원이라면 아련한 그 호된 기억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 것이다. 여자 회원들의 비명소리가 야밤에 부르짖는 여인네 목소리 마냥 남자들은 희열을 느껴 더 크게 옆줄을 흔들어 댄다. 드디어 뒤에 따라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타산악회의 야유가 터져 나온다. 분명히 그 출렁다리 옆에는 ‘장난을 치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다. 간신히 진정된 분위기가 된다. 줄줄이 다리를 건너간다. 건너편에서는 운해님의 카메라 세례가 시작되고 있다. 그렇게 기암병풍 속의 추억 만들기가 용트림 한다. 계곡은 깊고 볼 것은 참 많은데......

 

출렁다리를 지나 10분 내려오면 은폭포의 상단 바위 위에 서게 된다. 죄다 그 상단 바위 위에 서서 폭포수가 소[沼]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구경한다. 또 그 바위 위에서 간담이 서늘하게 장난을 치는 사람도 있다. 일행은 그 바위 아래로 내려가 은폭포의 소[沼] 앞에 선다. 그 안쪽을 쳐다보니 영락없는 여인의 거시기(?)를 빼닮았다.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모두 사진을 찍기에 분주하다. 오늘 아쿠아 신발을 가지고 온 은방울님은 옷을 입은 채로 소[沼]의 물에 잠겨본다. 또 효리님도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어 들어가 동심으로 돌아간다. 죄다 은폭포를 배경으로 추억의 앨범 단장에 바쁘다. 멋진 추억의 시간이다. 은폭포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을 지정거린다. 어깨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엔돌핀의 보급창고가 열린 것 같다.

 

 

계곡을 아래로 15분여 내려가게 되면 왼쪽으로 우뚝 솟아있는 암봉이 나타난다. 뭔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올라간다. 아니나 다를까 너럭바위가 나타나고 깎아지른 기암병풍의 단애[斷崖]가 숨을 죽이게 한다. 그리고 그 아래가 바로 관음폭포다. 이곳이 비하대이다. 그 비하대에서 바라보는 진경산수화는 그 옛날 겸재 정선 선행이 화폭에 담을 수밖에 없었음을 실감한다. 제각각 병풍으로 둘러쳐진 단애를 배경으로 한 컷씩 한다. 옆에는 산이 좋아서 산에서 죽은 고인의 추모비가 두개나 있어서 가슴을 짠하게 한다. 이제 거기를 되돌아 나와 가파른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관음폭포다. 보경사에서 여기까지 1시간 정도 걸려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에 수많은 인파와 타산악회원들이 뒤섞여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해골바가지처럼 구멍이 몇 개 숭숭 뚫려 있고, 왼쪽은 깍아지른 암벽이 하늘로 뻗어있고, 머리 위에 걸린 연산적교(吊橋·구름다리)가 걸려 있다. 그 구멍사이로 개울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일행은 관우폭포의 모래톱으로 가서 포즈를 잡고 있다.

 

이제 관우폭포를 보고 나면 머리 위의 연산적교를 지나 연산폭포로 다가간다. 연산적교는 구름다리이긴 하나, 그렇게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철제 보강이 잘 되어 있어서. 그 구름다리를 지나자마자 학소대에서 떨어지는 세찬 물소리와 함께 하얀 학 날개가 내려앉는 듯한 폭포수를 만나게 된다. 이미 앞서간 일행들이 철책선 아래로 빠져나가 그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잡고 있다. 이 보경사 계곡의 폭포 중에서 백미는 연산폭포다. 높이가 20여 미터, 폭이 10여 미터인 연산폭포 아래에 서면 시원함이 전해져 오고 포말이 부서져 내리는 모습에 황홀감에 빠진다. 누가 이 아름다운 모습을 말과 글로써 다 쓸 수 있으랴. 그저 가슴깊이 새겨둘 뿐이다.

 

그 시원함에 젖어 있으면서도 몸은 물을 부르고 있었으니, 서둘러 연산적교를 내려와 잠시 무풍폭포에 눈길을 준다. 나무에 가리어 이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그 아래가 잠룡폭포인데, 이것 또한 나뭇가지에 이파리에 가리어 제대로 안 보인다. 영화 ‘남부군’의 목욕장소로 알려진 잠룡폭포다. 세차게 떨어지는 그 소에서 남부군들이 목욕을 했다고 하나 철책에 가리어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아쉽다. 조금 계곡을 내려가면 보현폭포가 나오나 가뭄에 말라버린 폭포는 제 모습을 잃었다. 마음을 접고 나무계단 우측의 시원한 폭포수에 눈길이 간다. 여기가 상생폭포다. 그 두 갈래의 물줄기가 아래로 세차게 떨어지고 있는데, 그 오른쪽의 폭포 물줄기에 머리를 박고 있는 동방님을 보게 된다. 쳐다만 보아도 시원함이 엄습해 온다. 완전히 그 물줄기를 전세내고 있다. 오늘 오뚜기님을 친히 보필하기로 버스 안에서 맹세했는데, 그 질주 본능으로 내뺑개치고 선두로 달려와 저렇게 상생폭포 한 개를 독차지 하고 있다. 부럽다. 서둘러 내려서니 행운이님과 song이님이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다. 위의 관우폭포와 연산폭포를 안 보고 왔느냐고 했더니, 그냥 내려왔단다. 함께 움직이면서 동행했더라면 그 멋진 폭포들을 눈으로 보고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이야기를 듣고 왔을 텐데. 참 아쉽다. 첫산행에 참석한 관계로 아직 다른 일행과 어울린 시간이 적어 다소 서먹서먹함도 있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기존 회원들의 배려도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물론 처음 온 산우가 함께 어울려야 하지만 기존 회원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으면 소외되기 쉽다는 점이다. 또 기존회원의 약간 톤이 높은 말투에서 위압감을 느낄 수도 있지나 않을까.

 

 

상생폭포에서의 알탕이 시작된다. 남녀 회원이 함께 어울리고 또 물장구를 치고 보니 하루의 피로가 다 사라진다. 여름 계곡산행의 아쉬움을 남기면서 알탕으로 마무리를 한다. 좀더 한적한 알탕 장소도 있어서 여자회원 몇 사람은 그 아래의 계곡물에 담그고, 솔뫼님, 윤호님과 나는 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 알탕을 한다. 조용한 알탕이 때론 자연에 더 동화되기 쉽기에.

 

 

▶보경사와 뒤풀이

그 알탕 장소에서 보경사까지는 너덜도 나오고 시멘트 포장도로도 나오는 등 30분이 소요된다. 보경사를 경내를 관람하려는 일행은 경내로 들어가 보기도 한다. 신라 진평왕 25년(602년)에 진나라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지명법사가 창건을 하였다고 하는데 역사가 1,400년이나 되었다. 경내의 고목들이 그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보경사를 지나 주차장까지 가는 도로변의 가게에는 호박들이 쌓여 있고, 이 고장 명주인 ‘벌떡주’가 가게마다 쌓여 있다. 그 벌떡주를 먹으면 진짜로 벌떡 서느냐고 일행은 우스개 소리를 한다. 그리고 파전을 굽는 냄새가 여기저기 코를 찌른다. 뱃속에서 크락손 소리가 들린다.

 

 

향로교에서 주차장까지 7시간 남짓 12.4km를 걸어왔다. 아직 일행의 반은 오지 않았다. 아주 여유로움이 넘치는 산행이다. 알탕까지 하고 왔으니 피로도 결산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식당으로 향하는 일이다. 휴게소의 뷔페식당인데 생각보다 찬이 좋았다고 한마디씩 한다. 좋다 나쁘다 해도 관광버스 1대로 다닐 수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일등 산악회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 있을 것이다.

 

 

산악회의 역할과 목적은 과거에는 친목도모가 목적이었지만, 이제 흐름은 달라지고 있다. 산우들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물론 산이 좋고, 사람이 좋고, 산악회가 좋긴 하겠지만, 어떻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 네 번째 과제이다. 그 좋은 가치란 행복함과 만족감, 소속감, 유대감, 자긍심, 존재가치, 건강 지킴이로서의 건전한 역할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산악인이니까 당연히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산행을 하지만 여타 조건이 수렴될 때에 보다 건전하고 내실 있는 산악회로 거듭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산악회에 비해 우리 백산이 차원 높은 산행 모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을 하라’는 황금율 대로 우리 백산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 준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아직 2%만큼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산행이 건강을 지키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무지개꽃을 피우고 미래의 발전을 향한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번 산행의 진행을 맡아 수고해준 운해대장님, 그리고 뒤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와니님, 그리고 운영진 여러분과 함께한 참석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진정한 주인공은 여러분이기에. 여러분이 만족하는 그 순간순간을 위해서 노력하는 백산이 될 것이다. 백산 회원이라면 사진 한 장이라도 보게 되면 꼭 짧은 한 줄의 댓글이라도 달아주는 마음의 아량이 있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무임승차는 학창시절로 끝이 났당께유~~~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