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록펠러의 삶

부산갈매기88 2009. 9. 8. 08:41

세계 최고의 거부였던 존 록펠러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도매로 사탕을 구입한 뒤에 형제들에게 소매로 판매하여 이윤을 남기기도 할 정도로 경제관념이 철두철미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숫자의 인간’이라고 할 정도로 회계에 능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일기 대신 회계장부를 기록하였다. 그의 일화 중 대부분은 돈을 아끼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단골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에 팁을 줄 때 인색하게 주어 종업원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경비를 절감하는데 대가였던 그는 불필요한 지출을 찾아내어 낭비 요소를 줄이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손해를 입을 경우에는 쉽게 앓아눕고는 하였다. 그는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십만 달러 이상이 오가는 거래를 하다가 보험금으로 150달러의 손해를 보게 되자, 극심한 스트레스 장애로 병상에 눕기도 하였다.

 

그는 50대 초반까지는 지나치게 인색하고 금욕적이어서 웃는 얼굴을 보이는 적이 거의 없었다. 다만, 유일한 예외는 바로 돈이 잘 벌린다는 소식을 들을 때였다. 자분주의 사회에서 쾌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가장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은 바로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은 오락 삼아 하기에는 너무나도 불쾌한 경험을 많이 동반하는 활동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상거래가 언제나 이익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년기까지 존 록펠러는 돈 버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동이나 오락조차 즐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경쟁 속에서 패배할까봐 늘 긴장 상태로 생활했다.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던 그는 결국 암에 걸리어 의사로부터 돈과 생명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에 내몰렸을 때, 그의 내부에 잠들어 있던 놀라운 치유의 힘이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바로 심리적인 적응기제 면에서 억제와 이타주의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는 병상에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가 성경을 읽었던 경험은 그 자신도 미처 못 깨닫는 사이에, 명상이 심신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보이면서 그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 후로 그는 경제적인 손실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게 되었을 때면, 그리고 사업에 실패를 할까봐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면 성경을 낭독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바로 억제에 해당된다. 억제는 내부의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막대한 현금과 자산을 쌓아 놓은 상태에서도 재산이 조금이라도 축이 나게 되면 못 견뎌했기 때문에 돈으로 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수전노 같은 생활을 하던 그는 억제를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정반대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타주의를 통해 돈으로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이타주의는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독한 방법으로 경쟁회사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악덕기업주의 표본’으로 불리던 그를 ‘가장 모법적인 기업가’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 자신의 막대한 부를 사회에 기부함으로써 수많은 교회와 대학 등을 설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때 그가 사회에 환원한 기부금의 총액은 오늘날의 시가로 환산하면 무려 6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은퇴 후 죽을 때까지 그는 검소하고 성실한 농부로 살아갔는데, 97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의 모습을 주변에 사는 다른 농부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농사일을 하고 해가 지면 바로 잠자리에 들고 일요일은 종일 교회에서 보내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을 정도였다.

 

 

비즈 프라임 <부자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