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프랑스 혁명은 일본 아사마(淺間)분화에 의한 이상기온이 원인이다

부산갈매기88 2009. 10. 7. 15:23

   

<프랑스 혁명은 일본 아사마(淺間)분화에 의한 이상기온이 원인이다>

 

1783년 5월 일본의 아사마(淺間)산(후지산 북쪽에 있는 산)이 갑자기 대폭발을 했다. 이 아사마분화에 의한 재는 성층권까지 도달하여 햇빛을 차단하여 이상기온을 초래하였다. 농작물의 흉작은 기근을 가져와 사람들을 허덕이게 하여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하였다.

 

일본 아사마산의 분화가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일본에서의 분화가 멀리 떨어진 프랑스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아사마산은 봄부터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하여 4월 9일에는 산기슭이 울리고, 덜커덩거리는 창문이 떨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뛰어나왔다. 시커먼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5월 25일에는 아사마분화가 시작하여 시커먼 연기와 다량의 화산재가 3일간이나 동쪽하늘에서 땅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7월 5일이 되자 산기슭이 배와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튿날 오후에는 굉장한 폭발음가 함께 경석(輕石)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운명의 날인 7월 8일에는 대폭발의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와 용암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와 빨간 불은 초속 100미터 속도로 감바라 마을을 덮쳐버렸다. 화산재는 바람을 타고 일본 각지로 흘러갔다. 교토나 오사카에서도 화산재가 하늘에서 쏟아져내려 시계가 혼탁했다고 한다. 게다가 2개월 후인 9월이 되어도 그 상태는 계속되었다고 문헌은 기록하고 있다.

 

그해 6월 8일 북서대양의 아이슬란드의 럭키화산도 폭발을 하여, 분화구에서 20여 개의 불기둥이 치솟고, 새까만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용암이 빙하를 녹이면서 마을을 쓸어버렸다. 하늘은 며칠이나 햇빛을 가리어 제철이 아닌데도 눈과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으며 유럽은 청색 안개로 뒤덮였다. 이 청색 안개는 3주 후에는 편서풍을 타고 북반구를 뒤덮었다. 유럽의 연평균 기온이 1.3℃나 내려갔다.

 

그런데 16세기 초부터 19세기에 걸쳐서 지구는 한랭화로 유럽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조량의 저하로 식량 수확량이 감소하여 경제가 흔들렸다. 유럽인들은 거의 자포자기가 되어 범선을 타고 망망대해로 나섰는데, 그 때 많은 범선을 많드는데 많은 나무들이 채벌되어졌고 게다가 대량의 목탄을 소비하였으며 철로도 만들어졌다.

 

1784년 프랑스의 봄은 아주 늦게 왔다. 흉작에 의해 밀 가격은 상승하고 있어 경제 상황도 동요할 위기에 처하고 있었다. 1788년 엄청난 한발이 닥쳤고, 차가운 여름이 찾아와 서리가 내려 곡물 수확량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밀이 수확되지 않자 거리에서 빵이 사라지게 되어 사람들은 심각한 기근에 시달렸다. 정부는 그런 상황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절대왕정제하에서 귀족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귀족들은 귀중한 밀을 이발료로 주고 있었다.

 

1789년 마침내 굶주린 민중들은 무기를 쥐고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물밀듯이 들이닥치어 <자유, 평등, 박애>를 슬로건으로 민중은 왕정제를 타도하였던 것이다.

 

역사는 크게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일본에서 일어난 아사마산의 분화는 멀리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식량부족으로 민중을 이끈 나폴레옹은 마침내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해외에 병력을 파병하여 유럽 각지는 싸움이 반복되었다. 이상기온이 유럽 전 지역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유럽 각국은 계속해서 세계를 침략하여 전 지구 규모의 격동의 시대가 되었다.

 

 

UTAN 경이의 과학시리즈8 GAKKEN MOOK <지금 화산이 위험하다>에서 발췌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