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록펠러의 성공습관

부산갈매기88 2009. 11. 9. 08:58

존 D. 록펠러는 세 가지 놀라운 일을 해냈다.

 

첫째, 그는 세계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재산을 모았다. 첫 직업으로는 한 시간에 4센트를 받고서 뙤약볕 아래에서 감자를 캐는 일을 했다. 그 무렵 미국 전역에 백만장자가 대여서 명도 되지 않았다. 록펠러는 10-20조 원 사이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여자는 그와 결혼하기를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여자의 어머니가 자기 딸이 록펠러와 같이 아무 가망도 없는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가서 “인생을 포기해버리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록펠러가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인 7억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놀라운 일은 록펠러가 97세까지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지독하게 미움을 받았던 인물이다 사람들부터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편지를 수천 통이나 받았다. 밤낮으로 무장경찰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방대한 사업체를 세우고 관리하기 위해 끔직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견디어내야 했다.

 

철도 건설 사업가인 해리먼은 61세의 나이에 사업 스트레스로 죽었고, 담배사업으로 1억 달러를 벌었던 ‘벅’ 듀크도 68세로 생을 마감했다. 백만장자 가운데 오직 30명의 백인만이 97세까지 살았다. 억만장자 가운데 틀니를 끼지 않고서 97세까지 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록펠러는 97세의 나이에도 틀니를 끼지 않았다. 그는 평온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로 평생 흥분하는 법도 없었고 서두르는 적도 없었다. 또한 그는 평생 죽기 전까지 맨일 다섯 번 낮잠을 잤다.

 

55세에 건강에 나빠져 그는 의학 연구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할 생각이 들었다. 그의 건강이 나빠졌던 것을 계기로 록펠러 재단은 전 세계인의 건강증진을 위해서 한 달에 100만 달러씩을 기부했다.

 

록펠러는 어릴 때 어머니가 칠면조를 기르는 일을 도와 처음으로 돈을 손에 쥐었는데, 이후 죽기 전까지 8천 에이커에 달하는 자신의 영지에서 우수한 품종의 칠면조를 키웠다.

 

칠면조 기르는 일을 도운 덕분에 어머니에게서 받은 동전들을 써버리지 않고 벽난로 선반 위에 있는 깨진 찻잔 속에다 전부 모아두었다. 그는 하루에 37센트를 받고 농장에서 일했으며 그 돈을 전부 모아 50달러를 만들었다. 그 후에 자신이 모은 돈을 농장 주인에게 7%의 이자로 빌려주었다. 그 결과, 50달러 돈이 1년 만에 자신이 열흘간 피땀 흘려 일한 만큼의 소독을 안겨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제가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돈이 나의 노예가 되도록 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너무 많은 돈으로 자기 아들을 망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영지 내에 고쳐야 될 울타리 기둥들을 아들이 찾아내면 기둥 하나당 1센트를 주었다. 아들이 하루에 열세 개를 찾으면 13센트를 주었다. 그 다음에 그는 아들이 울타리 수리 일을 하면 한 시간에 15센트를 주었다. 아내도 아들이 바이올린 연습을 하면 시간당 5센트를 주었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고교를 마치고 몇 달 동안 상업학교에 다녔다.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학교 공부는 영원히 끝이 났다. 그런데도 시카고 대학에 5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늘 교회에 관심이 많았다. 젊었을 때는 주일학교를 맡아 가르쳤으며 춤도 추지 않았고, 카드놀이도 하지 않았으며 극장에도 가지 않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록펠러의 1% 성공습관>

-평온하고 차분한 성격을 유지한다. 평생 흥분한 적도 없었고 서두른 적도 없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매일 정오에 30분의 낮잠을 잤다.

-자신이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이 자신의 노예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 1% 성공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