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루즈벨트의 인간애

부산갈매기88 2009. 11. 23. 15:56

1919년 1월에 일어났던 사건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한 무리의 군인들이 언덕 위로 올라가 허공에다 장총을 겨누고 예포를 쏘았다. 루즈벨트의 타계를 알리는 총소리였다. 테어도어 루즈벨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렸을 때는 창백하고 병약했으며 천식으로 고생했다. 그래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서부로 갔다가 카우보이가 되어 별을 바라보며 잠을 자는 등 거친 생활을 했다. 그런 덕분에 당시의 유명한 권투 선투인 마이크 도노반과 권투를 할 정도로 건강하게 신체를 단련했다. 남아메리카의 야생 지대를 탐험했고, 스위스의 융프라우와 메터호른과 같은 산도 등반했다. 심지어 목숨을 걸고서 총알이 빗발치는 쿠바의 산 후안 언덕을 맹렬히 오른 적도 있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은 투장을 잘 부리고 겁이 많았으며 다칠까봐 무서워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손목, 팔, 코, 갈비뼈, 어깨를 다쳐가면서 위험을 무릅썼다. 시도하기에 두려운 일을 해나감으로써 용기를 키워나갔다고 한다. 그런 노력의 결과 으르렁거리는 사자와 불을 뿜는 대포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 되었다.

 

1912년 불 무스 캠페인 동안에 반미치광이인 하 남자가 연설을 하러 가던 루즈벨트의 가슴을 총으로 쏘았다. 그는 자신이 총을 맞았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곧장 강당으로 가서 연설을 시작하더니 과다출혈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연설을 계속했다. 이어서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대통령 시절에 그는 어떤 군 장교와 권투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장교가 정확히 그의 눈을 가격하여 혈관이 터지는 바람에 눈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젊은 장교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장교가 다시 권투 시합을 하자고 요청하면 거절만 했을 뿐이었다. 장교는 대통령이 권투 시합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다. 한참 세월이 흘러 한쪽 눈이 시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그 포병 장교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결코 알지 못하게 했다.

 

늘 바쁜 속에서도 백악관에서 대통령으로 재직 당시 짬을 내서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 오전 시간 내내 연이어 진행되는 5분 면담으로 일정이 빡빡했는데도 곁에 늘 책을 끼고 다녔다.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오기 전의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책을 읽었다.

 

음악도 좋아했지만 정작 자신은 음치였다. 혼자 일할 때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란 복음 성가를 종종 불렀다. 한때 한 서부 마을의 거리를 지나갈 때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자신의 모자를 던져주고 느닷없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혼잣말로 불렀다.

 

언젠가 서부를 가로지르는 기차 여행 중에 자신의 전용 객차에서 여러 명의 장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농부가 기찻길 옆에 있는 대통령의 옥수수 밭에 서서 모자를 벗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루즈벨트는 그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펄쩍 뛰면서 기차의 맨 뒤칸으로 다려가서 자신이 쓰고 있는 모자를 열렬히 흔들었다. 정치적인 쇼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사람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생에 마지막 해에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해서 겨우 예순 살에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는 한 오랜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언제 어느 때 저승행일 될지 모르네.”

 

마침내 1919년 1월 4일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은 “불 좀 껴주게나.”였다고 한다.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 1% 성공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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