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용병술의 관건은 오로지 믿음이다

부산갈매기88 2009. 12. 7. 08:35

예부터 사업을 키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치열한 경쟁에서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고, 또 하 나는 상호협력 하에 신용을 쌓음으로써 고객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중국 유명상인 고경우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장사를 하면서 신용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한번은 납품일자가 다가오고 있었으나 돼지갈기의 주문수량을 미처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외국 거래처와의 친분을 빌미로 며칠 정도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계약한 판매가를 훨씬 웃도는 가격으로 양질의 돼지고기를 구입해 제시간에 칼같이 납품을 마쳤다. 이러한 철저한 신용원칙이 사업성공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항일전쟁이 한창일 무렵 고경우는 일본군이 물려가면서 생길 시장의 공백을 재빠르게 차지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중국의 돼지갈기 시장은 천진, 중경, 상해 지역으로 3분되어 삼각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 지역은 나름대로의 이점을 가지고 있어 천진은 북방지역의 돼지갈기 집산지였고, 중경은 가공의 중심지였으며, 상해는 수출에 유리한 곳이었다.

 

고경우는 심사숙고 끝에 천진과 상해지역으로의 사업확장을 도모하기로 했다. 당시 회사 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험에 우려를 표시하느라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계획을 착수해 나갔다.

 

그는 적당한 기회를 봐서 상해지역을 점령하리라 마음먹고 먼저 그 지역에 사람을 파견해 영업기지를 구축하도록 했다. 상해는 대외수출이 활발한 지역인데다 거리감 없이 지내는 외국 거래처들도 이미 상당수 있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문제는 천진지역이었다. 전혀 연고가 없는 낯선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지 사정을 훤히 아는 실력 있는 인재를 찾아야 했다. 당시 고경우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인물은 원충소였다. 그는 과거에 돼지갈기 장사를 했던 사람으로 고영우도 그와 거래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충소를 황소고집이라며 비난했지만 고경우만은 그를 쓸 만한 재목으로 보였다. 하지만 원충소는 고경우의 스카우트 제의에 쌀쌀한 반응을 보였다.

 

“항일 전쟁에서 중국이 이기거든 그때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일본이 항복하던 날,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승리를 자축했다. 이때 누군가 원충소의 가게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나가보니 고경우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항일전쟁에서 승리하면 나와 일하기로 하지 않았나. 이제 전쟁에서 이겼으니 약속을 지키게.”

원충소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을 고경우가 여태 기억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더불어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한다면 걱정할 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삼고초려 끝에 원충소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자 또 하나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사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사회가 극구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생면부지의 인물에게 그 넣은 천진시장을 몽땅 맡기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의견이었다. 고경우가 온갖 방법으로 설득에 나섰지만 이사회의 입장은 너무나 확고했다.

 

그러자 고경우도 강경한 태도로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그의 채용을 끝내 반대한다면 자신의 지분을 팔고 경영일선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이사회의 승낙을 얻어낸 고경우는 원충소에게 천진시장의 모든 업무에 대한 결정권을 일임했다.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간판을 절대 내리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을 부여받은 원충소는 고경우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업에 대한 강한 열의를 느꼈다. 이에 실질적인 성과로 고경우의 은혜에 보답하리라 결심했다.

 

천진으로 돌아간 그는 천진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이 빠져나간 시장의 공백을 무섭게 점령해 나갔다. 그리하여 불과 1년 뒤에는 천진시장에서만 무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순이익을 거두어들였다. 물론 그러한 결과를 일구어낸 일등공신은 바로 원충소라는 인재를 알아보고 일을 추진했던 고경우라 할 수 있다.

 

 

정판교 <거상의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