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요행을 버리고 부지런히 땅을 일궈라

부산갈매기88 2009. 12. 24. 09:10

간혹 우리에게 행운이 찾아올 수는 있지만 행운의 신이 평생 따라붙어주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거상이 되기 위해서는 한몫 크게 잡아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환상이나 요행을 바라는 투기수법은 아예 생각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차근차근 밭을 일궈 나가면서 예리한 혜안으로 유리한 때를 포착할 수 있어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

 

중국의 거상 정유동의 삶은 이런 점에서 사업에 뜻을 둔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광동성 순덕 출신의 정유동은 자수성가한 여느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치열한 사회에 뛰어들어 파란만장한 청년기를 보냈다. 열다섯 살 때 홍콩으로 건너간 그는 ‘주대복금행’이라는 보석가계에 취직해 온몸으로 장사를 배웠다.

 

그 후 1946년부터 1946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그는 홍콩시장의 생리를 파악하고 보석사업의 노하우와 상도를 익히면서 평생사업을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갔다. 그 결과 그는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실력으로 홍콩의 ‘보석 대왕’에 등극했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에도 투자해 부호대열에 합류했다.

 

이처럼 그가 일개 도제에서 대부호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함께 변함없는 기업경영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밑바닥의 허드렛일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정상에 올라선 그는 말단직원에서부터 초고위 임원까지 회사 전체가 돌아가는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이러한 통찰력은 제도를 수립하고 경영관리를 강화하는데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정유동 또한 천부적인 사업 감각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그는 몸으로 습득한 실전경험과 감을 통해 ‘사업을 일으키려면 인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진리를 깊이 체득했다. 그래서 인재의 선별과 활용에 많은 공을 들이고 인재를 가치를 중히 여겼다. 아울러 “자질이 뛰어나고 신뢰할 만한 인재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 말할 정도로 용인(用人)에 신중함을 기울였다.

 

한 미국인 교수는 인생처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신용과 약속을 목숨처럼 중시하고 매사에 근면성실하고 신중해야 한다. 은혜를 입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며 사리사욕을 위해 의리를 저버리지 마라.”

 

경영자로서 수십 년을 살아온 정유동의 삶은 바로 그러했다.

그의 성공비결의 핵심은 ‘근면함’에 있었다. 근면과 성실로 무장한 그는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히 정도를 걸어 성공과 부를 축적해 나갔다. 그야말로 ‘부지런한 자가 성공한다.’는 말의 진가를 몸소 보여준 기업가였다.

 

한편 그가 보석업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해 가는 과정에서는 그의 남다른 경영 책략과 전술이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10여 곳이 넘는 분점에 일일이 책임자를 파견해 모든 업무를 직접 통제, 관리했다. 또한 매주 한 번씩 책임자들과 회의를 열어 업무발전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영업상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나갔다.

 

또한 고객들을 접대할 때는 항상 친근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철칙으로 삼았다. 직원들에게도 고객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라고 강조했다. 그 자리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고객들에게도 한결같은 태도를 보여야 함은 물론이었다. 그냥 돌아갔던 고객들도 친절한 서비스에 좋은 인상을 받게 되면 반드시 다음에 알아서 그곳을 찾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유동은 가게 인테리어와 제품 디자인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가장 번화한 지역마다 위치해 있던 그의 보석가게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제품의 개성 있고 창의적인 디자인은 손님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정판교 <거상의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