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호가호위(狐假虎威)

부산갈매기88 2010. 1. 29. 10:27

동한시대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대로 타인의 체면을 교묘하게 이용해 부를 축적한 이야기가 있다.

 

동한의 환제시대 때, ‘십상시(十常侍)’ 중 하나였던 환관 장양(張讓)은 환제가 집권하는데 도움을 준 연유로 후작에 봉해진 이후, 막강한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인재 등용과 승진 여부도 그의 말 한마디에 좌우될 정도였다. 때문에 장양의 집 앞에는 그에게 잘 보이려는 아첨꾼들과 돈으로 환심을 사서 출세해보려는 관리들로 늘상 장사진을 이루었다.

 

맹타(孟佗)라는 부자 상인 또한 이 소식을 듣고 장양에게 접근하고자 했다. 당시 장양은 궁내에서 황제를 보좌하느라 바빠, 가정의 일상사는 집사로 하여금 관리하도록 했다. 따라서 찾아온 손님들을 들여 장양을 만나게 해주는 일은 전적으로 집사의 권한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맹타는 우선 집사와 신분을 쌓아두기로 마음먹고 매일 그의 단골주점을 찾아가 집사가 들르기만을 기다렸다. 예상대로 며칠 후 집사가 술을 마시러 주점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마침 돈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주인장에게 다음번에 술값을 내겠다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바로 이때 맹타가 집사의 술값을 대신 계산해주겠노라고 나섰다.

 

이렇게 호의를 주고받아 안면을 튼 두 사람은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인의 입담과 머리를 따라올 자가 어디 있겠는가? 맹타는 어느새 집사의 마음을 사로잡아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으니 이제 꾀한 바를 슬슬 행동에 옮길 차례였다. 맹타는 집사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 그를 대접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결국 받기만 한 것이 미안해진 집사는 자신이 도울 일이 없는지 맹타에게 물었다. 맹타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괜찮다고 답했다. 그러자 좀더 호의가 두터워진 집사는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다시 한번 의중을 떠보았다. 이에 맹타는 몹시 부담스럽다는 말과 함께 한 가지 청을 꺼내 놓았다.

 

“별다른 요구사항은 없습니다만 혹시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에게 머리 숙여 인사한 다음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실 수 있는지요?”

 

엄연히 말하면 집사도 노비나 다름없는 신분이기 때문에 높은 사람에게 굽실거리는 일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그래서 맹타의 부탁이 그리 어려울 게 없다 생각하여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이튿날 맹타가 장양의 집을 찾아가니 어느 때와 다름없이 장양을 만나러 온 사람들로 주변 골목이 북적대고 있었다. 이윽고 집사가 노비들을 거느리고 문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그때만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앞으로 몰려 나왔다.

 

이때 계단 위에서 뒤쪽에 서 있는 맹타를 발견한 집사는 아무 말 없이 군중을 헤치고 나가 그에게 공손히 인사하고는 집 안으로 안내했다.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집사가 맹타에게 예우를 다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장양과 보통 사이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그 후 장양을 미처 알현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나없이 맹타를 찾아왔다. 맹타는 열흘이 채 안 되어 그들이 가져다 바친 돈으로 어마어마한 재물을 손에 넣고 그 길로 멀리 달아났다.

 

 

정판교 <거상의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