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비즈니스

LA한인음식밴더로 대성공한 ‘거리의 음식왕’ 로이 최,

부산갈매기88 2010. 4. 9. 10:41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는 한인 거리음식밴더 ‘고기(Kogi) BBQ’의 로이 최(39) 주방장을 신문 한 면 전체를 할애해 눈길을 끌고 있다.

WSJ는 ‘거리의 왕 실내로 가다(The King of Streets Moves Indoors)’라는 제목과 함께 최 씨가 어떤 성장배경속에 자랐고 어떻게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됐는지 상세한 인생스토리를 싣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최 씨는 김치와 불고기에 멕시코 음식 타코를 접목한 ‘김치 타코’를 개발해 이동식 트럭밴더로 고객들을 열광시킨 주인공.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이 여러 차례 다룬 그가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이동차량이 아닌 실내 음식점을 오픈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서쪽의 한 백화점에 마련한 테이블 10개짜리 식당은 2월말에 오픈 예정이다. 그는 “5월에 이곳에 다시 오면 아마 주차 차량들로 난리가 날지도 모른다. 주차공간이 20대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저널은 2008년 말 트럭 한대를 끌고 멕시칸 타코에 한국스타일의 고기를 넣은 메뉴가 선셋 블러바드 일대의 나이트클럽 손님들에게 선보인지 석달만에 수백명이 줄을 서는 등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고 소개했다.

고기 BBQ는 뜨거운 반응에 이동트럭들을 여러 대 늘렸고 이 차량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고객들은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는 등 진풍경을 보였다.

현재 ‘고기 BBQ’는 트럭 4대를 주로 LA의 나이트클럽 일대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밴더를 따라다니는 트위터들은 무려 5만2000명에 달한다.

새로 개업하는 식당에서는 타코를 메뉴에서 제외하는 대신 쌀밥을 주 재료로 베이컨과 밤, 상추, 깻잎 등 야채, 양고기 등을 가미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씨의 파트너인 마크 맨구에라 씨(31)는 “처음 김치타코 아이디어를 냈을 때 아무도 성공을 예상 못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맨”이라고 말했다.

이제 코리안타코는 LA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메뉴가 되어버렸다. 지난 6월 280개의 메뉴가 있는 '바자 프레시 체인'은 최씨와 여러 차례 미팅을 갖고 ‘바자 고기타코’라는 메뉴를 내놓았다.

고기 BBQ의 후발 경쟁자들은 ‘불(Bool)’, ‘불고기(Bull Kogi)’, ‘갈비(Calbi)’ 등 코리안 타코의 다양한 버전으로 탄생했다. 현재 코리안 타코는 샌프란시스코부터 보스턴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다.

뉴욕에서 ‘노부 엠파이어’를 탄생시킨 드류 니포런트 같은 호기심 많은 식당주인들은 고기타코를 맛보기 위해 LA까지 날아오는 수고를 감수한다. 뉴욕의 유명 한인 식당 모모후쿠의 주방장 데이비드 장 씨는 지난 봄 최 씨를 만났다면서 “그의 음식은 특별한 한국의 맛이 있다”고 평가했다.

2살 때 미국에 온 그의 부모는 세탁소부터 식당, 보석가게까지 다양한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이사를 12번이나 다녔다. 그는 열두살 때까지 A를 놓치지 않을만큼 공부를 잘 했다. 하지만 열세살 때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가출도 몇 번 했고 성적도 C를 받는 등 뚝 떨어졌다. 약에도 손대고 범죄에 연루되는 등 문제아였다.

열다섯살 때 부모는 그를 캘리포니아 시그널 힐에 있는 사던캘리포니아 밀리터리스쿨에 입교시켰다. 그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비슷한 아이들 틈에서 동질감을 느낀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후 1년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그는 플러톤에 있는 캘리포니아 스테이트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웨스턴스테이트 대학에서 법대대학원도 수강했다. 그러나 한인 2세들이 주로 다니는 명문교가 아니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것으로 보았다.

법대를 그만 둔 그는 술을 즐기고 LA 한인타운의 나이트클럽에 출입하는 등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TV에서 에미릴 라가스 쇼를 즐겨 봤는데 그 때 인생의 돌파구가 열렸다.

요리학교를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아버지 최수명 씨(59)는 “한국부모들은 남자가 주방장이 되거나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는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 공직자가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아들의 결심을 안 그는 기왕이면 ‘요리학교의 하버드’에 들어갈 것을 주문했다. 96년 그는 뉴욕주 하이드팍에 있는 아메리카요리학교로 전학했다. 그의 반항아적 기질은 요리학교에서도 여전했다. 종종 자신만의 조리법을 주장해서 친구들을 화나게 한 것이었다.

재학중 레스토랑 실습은 유명식당인 뉴욕의 르 버나딘에서 했는데 그는 참치를 잘 썰지도 못했고 음식을 태우기도 했다. 르 버나딘의 에릭 리퍼트 수석주방장은 조리학교 인턴들이 워낙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최씨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1년 힐튼 호텔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비버리 힐에 있는 힐튼 호텔의 샌디 머피 총괄매니저의 눈에 띄어 주방장으로 가게 됐다. 그후 이 호텔의 식음료 담당이사였던 맨구에라 씨를 알게 된 최씨는 함께 타코를 코리안 스타일로 만드는데 의기투합, 2008년 가을 타코 트럭을 실행에 옮겨 머피 매니저를 놀라게 했다.

‘고기 트럭’에서 일하는 요리사 중 하나인 아이시스 산체스 씨는 “로이 주방장은 청결에 관해 아주 신경을 많이 쓴다. 매일 아침 특급식당에서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모든 메뉴의 맛을 보게 한다”고 말했다.

고기 BBQ를 오픈한 첫 해 최씨는 약 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9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고 각 트럭의 매니저들이 3만8000 달러를 가져갔다.

최씨는 고기 BBQ를 시작할 때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5살짜리 손녀 케일린이 ‘타코 트럭’이라는 말을 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됐다.

최씨의 아버지는 “아들은 아마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성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들이 하고 있는 일이 기쁘다. 지금 아내와 나는 아들을 100% 지지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출처: [조인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