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위대한 결단: 빛의 제국 선구자 니콜라 테슬라>

부산갈매기88 2010. 5. 13. 07:44

 

에디슨의 지인 한 사람이 어느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소개장을 써주었다.

“친애하는 에디슨 선생님! 제가 아는 위대한 인물은 2명뿐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에디슨 당신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젊은이입니다.”

 

이 소개장을 들고 에디슨을 찾아간 젊은이의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 :1856~ 1943)였다. 세르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적분(積分)을 암산으로 풀 정도로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다섯 살 때 이미 발명을 시작했을 정도로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1884년, 그는 대서양을 건너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갔다. 소개장을 받아든 에디슨은 28세의 젊은이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것을 알아보고 그를 채용했다.

 

당시 에디슨은 직류(DC)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류전기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송전할 수 있는 거리가 매우 짧아서 1킬로미터 마다 전력공급 장치인 발전기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었다.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시스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발명한 교류(AC)시스템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디슨은 교류시스템이 불안정하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에디슨은 테슬라의 뛰어난 자질과 능력을 인정했지만, 두 사람은 직류와 교류에 대한 생각 차이 때문에 결별을 하고 만다. 니콜라는 대단한 천재였지만 돈을 다루는 데는 천치에 가까웠다. 그는 돈이 없어서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교류시스템 완성에 매달렸다. 결국 테슬라는 교류로 전송하는 배전 시스템을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몇 차례 실험을 통해 그것이 직류시스템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한 테슬라는 1885년,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그 유명한 ‘전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에디슨은 자신이 선점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전쟁의 승리자는 테슬라였다.

 

1893년 5월 1일 열린 시카고 세계 박람회를 밝힌 전기는 교류시스템이었다. 박람회가 개장 하는 날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버튼을 누르자 수십만 개의 백열전등에 불이 들어왔고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에 교류 시스템이 채택됨으로서 테슬라는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1896년 11월 16일 자정, 나이아가라 폭포에 세워진 수력발전소의 가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짐으로서 테슬라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날 축하파티에서 테슬라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나는 단지 성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얻는 즐거움과 그것에 의해 동료들에게 베풀어지는 선을 위해 일을 합니다. 어떤 물질적인 이득이나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정신으로 나는 양심에 따라 살아갑니다.“

 

이상주의자였던 테슬라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난 연설이었다. 그래서인지 테슬라의 일생은 늘 가난하고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교류 시스템 외에도 원격 조정으로 움직이는 자동 보트, 고주파 유도 코일인 테슬라 코일 등 25개국에서 적어도 272개의 특허를 획득하고 인류의 문명사를 바꾼 수많은 발명을 했지만 평생 독신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에디슨은 뛰어난 발명가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의 발명품을 상업화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사업가였다. 반면 테슬라는 그런 재능이 없었다. 따라서 에디슨의 직류시스템보다 훨씬 뛰어난 교류시스템을 개발하고도 그것의 상업화에 따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뉴욕의 싸구려 호텔방에서 지켜보는 사람 없이 86세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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