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역사를 징계하고 현재를 숙고하라

부산갈매기88 2009. 4. 28. 10:17

<징비록>은 1586년 일본 사신이 우리나라에 다녀간 일을 시작으로 해서 1598년 이순신 장군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의 일본과의 관계, 명나라의 구원병 및 제해권 장악에 대한 전활 등이 매우 소상하고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징비록> 첫머리를 보면 성종과 신숙주의 대화가 나오는데, 신숙주가 세상을 떠날 무렵 성종이 묻는다. “경은 나에게 남길 말이 있소?”

 

그러자 신숙주가 대답한다. “ 아무쪼록 앞으로 일본과 실화(失和)하지 마시옵소서.”

 

실화하지 말라는 것은 분쟁을 유발하지 말라는 뜻이다. 성종은 신숙주의 유언을 수용해 따랐다. 하지만, 신숙주가 즉은 해가 1475년 이었고, 성종의 붕어가 1494년이었다. 임진왜란은 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1592년에 일어났다.

 

일본과 실화할 무렵, 일본사신 눈에 비친 당시 조선을 어떠했는가.

 

1586년 일본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일본 전역을 평정하고 66주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다. 안동을 지나던 야스히로가 길가에 도열한 병사들의 창을 비웃는 투로 말했다.

 

“당신들 창의 자루가 참으로 짧습니다그려.”

 

그는 또 상주 목사 송응형이 베푼 주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야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보냈기에 이렇게 터럭이 희어졌지만, 귀공께서는 기생들의 노래 속에서 편안하게 세월을 보내는데 어찌 머리가 희어졌소?”

 

대단한 비아냥이다. 그런데 송응형은 그때 부끄러운 줄이나 알았을까.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자 예조판서가 베푼 자리에서 야스히로는 호초(약재로 쓰이는 후추 나무열매)를 한 주먹 꺼내더니 자리에 뿌렸다. 그러자 기생들과 악사들이 달려들어 호초를 줍느라 잔칫상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야스히로는 크게 질타했다.

 

“너희 나라가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아랫사람들의 기강이 이 모양이니 이르고서 어찌 나라가 온전키를 바라겠느냐?”

 

 

21세기 북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