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온유한 자가 복을 받는다

부산갈매기88 2009. 5. 13. 11:51

1920년대 평양에 백선행이라는 이름의 과수댁이 살고 있었다. 시집을 가서 아들을 하나 얻은 뒤 열여섯 살에 남편을 여의고 홀로 된 여인이었다. 주위에서 모두 불쌍히 여겼는데 교회에서 그 과수댁을 전도하여 교회 가족으로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그녀는 밤낮으로 삯바느질을 하며 시댁을 돕고 아들을 양육했다. 바느질을 하면서 성경말씀을 외우고 찬송을 불러가며 즐겁게 일을 했다. 일감을 주는 사람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며 정성을 다하여 바느질을 했다. 그러는 동안 시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아들은 장성하여 장부가 되었다.

 

삯바느질은 늘고 늘어서 가내공장을 차릴 수 있을 만큼 돈이 모아졌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살림기반이 튼튼해졌다. 그렇게 돈이 모였을 때, 그녀는 남의 산 밑자락에 있던 시어머님과 남편의 묘지를 이장할 생각을 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이렇게 넉넉하게 지내는데, 돌아가신 분들의 묏자리는 우리 땅에 모셔야 할 것 아닌가.’

 

그녀는 땅을 수소문하여 거간꾼으로부터 아주 좋은 땅이라는 다짐을 받고 2백 냥을 들여 야산 하나를 샀다. 그런데, 막상 이장을 하려고 땅을 파 보니 산은 온통 돌짝밭이었다. 어떻게든지 조금 더 나은 땅을 찾아서 이리저리 파보았지만 좀처럼 흙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겨우 시어머님과 남편의 산소를 이장해 놓고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손해를 본 것이 다행이구먼. 다른 사람이 이런 땅을 사놓고 마음이 많이 상했다면 어쩔 뻔 했노. 마음만 상했겄나 판 사람을 걸어서 고소를 하고 난리를 치렀을지도 모르지. 그저 나 하나 마음 상했으니 그것으로 됐구만.’

 

온동네에 소문이 퍼져 거금 2백 냥이 주고 산 땅에 백과부집이 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소문에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했다. 돌덩어리 산이라도 자신의 땅이고 어머님과 남편의 산소를 모셨음에 흡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사람들이 도청 직원을 앞세워 찾아왔다. 그들은 시멘트 공장을 세우려는 사람들인데, 지질조사를 하던 중 그녀의 산이 온통 석회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1천 냥을 줄 테니 팔라고 했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산 것보다 5배로 사겠다니. 그녀는 막무가내로 안 팔겠다고 잘라 말했다.

 

며칠 후 도청관리와 광산업자들은 찾아와 돈이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2천 냥을 제시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고민했다.

 

“우리가 처음부터 너무 싸게 불러서 이렇게 되었다. 아무리 조선 사람, 그것도 과부의 땅이지만 돈을 제대로 쳐줘야겠다.”

 

며칠 후 그들은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그들은 처음부터 말을 잘못했음을 시인하고 2만 냥을 주겠으니 남편과 시어머님의 산소를 더 좋은 산으로 모시라고 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들의 의도를 알고 땅을 팔았다.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수밖에는.

 

 

김희택 <고래가 춤추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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