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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단: 스시 이코노미의 창시자

부산갈매기88 2009. 5. 19. 08:24

도쿄의 식당에서 맛있는 참치를 먹지 못하면 ‘전통 스시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 정도로 참치는 필수 메뉴다. 스시의 역사는 2천년에 달하지만, 참치를 먹는 현재의 습관이 탄생 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1972년 8월14일을 ‘비행기를 탄 생선의 날’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생선이 비행기로 공수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1960년대 후반, JAL(일본 항공)의 화물담당 직원 오카자키 아키라(Okazaki Akira)가 발상전환을 통해 ‘날참치의 비행’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참치는 전 지구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됐다.

 

당시 JAL의 여객기가 외국의 활주로에 착륙할 때는 화물칸이 섬유, 소형 전자제품들로 미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도쿄로 돌아갈 때는 화물칸이 으레 비어 있었다. 편도 문제로 인해 JAL 매출에서 화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3%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고부가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항공사로서는 막중한 위기였다. JAL 화물사업 신규고객 개발 업무를 맡고 있던 오카자키는 한직으로 알려진 화물 부서로 자진해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외국에서 일본국내로 들여다 팔 수 있는 물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식품이었다. 대부분의 식품은 항공 수송에 적합하지 않았다. 과일과 채소처럼 마진이 낮은 상품이어서 제외됐다.

 

육류 역시 항공 수송에 적합한상품은 아니었다. 그는 비싼 가격과 부패하기 쉬운 성질 때문에 수산물이 항공 수송 요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품목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오카자키는 새벽마다 도쿄 시내에 위치한 쓰키지 어시장을 찾았다. 현장학습 결과 그는 참치에 눈독을 들였다. 스시를 즐겨먹는 일본인들은 1960년대 후반이 되자 모두들 참치를 못 먹어 안달이었다. 그러나 공급은 증가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장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는 현실과 그 엄청난 크기를 감안할 때, 참치는 새로운 화물사업이 요구하는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 맞다고 그는 판단했다.

 

조사를 해보니 서양 사람들은 참치를 기름기가 많아서 먹지 않고 고양이 사료정도로만 이용하고 있었다. 오카자키는 캐나다로 날아가서 그곳 동부 연안의 참치 조업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곳 어업의 주종은 대구나 청어였다. 참치는 대구잡이 어부에게 골칫거리였다. 참치가 그물에 걸리면서 그물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어부들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오카자키는 참치를 잡아 일본에 수출하면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어부들을 설득했다.

 

그는 회의적인 어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표준 이익 분배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것은 경매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캐나다인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 경매회사가 도쿄 주재 캐나다 영사관에 재빨리 판매 가격을 통보해 주면 영사관은 그것을 다시 어부들에게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그 결과 오카자키는 복잡한 교역 네트워크의 투명성을 확립할 수 있었고 어부들을 참치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1972년 8월 14일 오전 5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캐나다산 참치 5마리가 쓰키지 경매장에서 팔려나갔다. 그 후 JAL은 현지 어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참치운송에 독점적인 위치를 유지하게 됐는데 1974년 8월, JAL의 캐나다발 국외행 화물량의 91%를 참치가 차지할 정도였다.

 

현재 참치는 미국인 3천만 명 이상이 즐겨먹는 세계의 음식 중 최고의 자리에 등극했고, 나리타 공항은 최고의 어항(漁港)이 됐다.

 

 

<중소기업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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