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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비어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부산갈매기88 2009. 5. 22. 09:20

 

드비어스(DeBeers)는 20세기 내내 전 세계에서 캐낸 다이아몬드의 85~90퍼센트를 판매한 가히 독보적인 회사다. 누구나가 눈독을 들이는 가장 값비싼 보석을 한 회사가 100년 이상이나 어떻게 그토록 막강한 독점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이아몬드를 지배하고자한 뛰어난 사업가의 예견력과 사업전략 탓이다. 이 회사를 창업한 세실 존 로즈(Cecil Jhon Rhodes : 1853~1902)는 사업가이자 정치가로서 남아프리카인들에게는 무자비한 정복자로, 영국인에게는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70년 남아프리카로 건너가 다이아몬드광(鑛)과 금광을 경영했고, 1880년 이후에는 정계에도 진출해 활약하면서 철도와 전신 사업 등에도 손을 대어 남아프리카의 경제계를 지배하는 막대한 자본가가 됐다. 그는 자본의 냉정한 논리를 누구보다 철저하게 파악했고, 독점 자본의 무한한 지배력을 믿었다.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장악한 로즈는 런던을 중심으로 한 10개의 다이아몬드 판매상 카르텔을 형성했다. 그는 상인들에게 다이아몬드의 안정적 공급을 약속하면서 다이아몬드 수요조절에 대한 유통 파이프라인을 통제하는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몇 년 사이에 다이아몬드 판매상 카르텔은 125개로 확대됐고, 로즈는 드비어스의 단독 소유이거나 공동 소유인 13개 광산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를 전 세계에 독점 공급했다. 20세기 초, 로즈가 사망한 후에도 드비어스는 이 카르텔을 유지하면서 피비린내가 나는 다이아몬드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해 나갔다.

 

로즈의 뒤를 이은 사람은 오펜하이머(Ernest Oppenheimer)인데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diamond is forever)”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로 다이아몬드에 관한 드비어스의 영향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드비어스는 세계 생산량의 44퍼센트에 달하는 쉐어를 바탕으로 러시아, 캐나다 등지에서 생산되는 세계 생산량의 25퍼센트에 달하는 다이아몬드를 사들이면서 독점적 위치를 확고히 해냈고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그들의 도매상과 소매상에서 판매했다.

 

그러나 드비어스의 아성도 1990년 구소련의 붕괴로 붕괴의 조짐을 보였다. 러시아, 호주, 캐나다, 인도 등지에서 드비어스의 독단적 카르텔에 반기를 든 기업들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품질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드비어스는 새로운 게임을 고안해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의 품질을 보증해주는 상품서명인 ‘포에버마크(Forevermark)’로고를 개발해서 브랜딩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치열해져가기만 하는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드비어스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영향력은 점차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대세긴 하지만 드비어스의 100년 독점 신화는 로즈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남을 것이다.

 

사실 로즈는 금권정치와 독점 카르텔로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하나가 됐다는 멍에를 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점을 깊이 인식한 로즈는 사업에서 은퇴한 후 자신의 이름을 딴 ‘로즈 장학금’을 설립해서 지난 100여 년 간 많은 영재들을 키워냈다.

 

이 장학기금은 매년 미국인 30여 명을 포함해 각국에서 80명 정도를 뽑아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를 시키는 데 그 수혜자들 중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블레어 영국총리를 비롯해서 수전 라이스 전 국무장관,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군 사령관 등 많은 지도급 저명인사들이 배출됐다.

 

<중소기업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