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조르지오 아르마니: 스스로 배신하지 마라

부산갈매기88 2009. 5. 23. 14:57

디자인은 배운 적도 없다. 의사가 되기 위해 밀라노대학 의학부에 들어갔으나 중퇴하고 백화점 직원이 됐다. 7년 동안 남성복 코너의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면서 디자인에 눈을 떴다.

 

그의 아방가르드(Avant-garde)한 디스플레이에 매혹된 패션 회사 니노 세루티(Nino Cerruti)의 중역이 그를 스카우트해서 남성복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했다. 그는 여기에서 8년간 텍스타일 기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디자인의 기본 테크닉을 배울 수가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20세기 후반에 세계 남성복과 여성복에 일대 혁명을 몰고 온 ‘패션의 혁명가’ 조르지오 아르마니 (Giorgio Armani: 1934~)다.

 

그는 1972년 첫 컬렉션을 가진 이후, 1974년에 처음으로 ‘아르마니’라는 이름으로 남성복 브랜드를 만들고, 1975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의상을 담당하면서 일약 패션계의 기린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르마니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딱딱하기 만한 남성복에 일대 혁신을 가했다. 그는 과감하게 재킷 속의 패드와 안감을 떼어내고 몸 위에 자연스럽게 걸쳐지는 옷을 만들어 냄으로서 ‘모던 클래식’의 원조가 됐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최고의 품위를 지켜 주는 그의 디자인은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르마니는 유명배우에게서 광고효과를 얻는 최초의 디자이너가 됐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과장된 기교 없이 정수만 압축시킨 단순함과 우아함을 추구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재킷의 해체를 통해서 남성에게는 편안함을 주었고 동시에 커리어우먼에게는 권위를 부여했다. 실용적이고 고급스러운 아르마니 재킷은 곧바로 그에게 ‘재킷의 왕’이라는 칭호를 안겨주었다. 그는 1981년 ‘타임’지의 표지 인물이 됐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를 ‘맨허튼의 정복자’라고 표현했다. 아르마니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나의 목표는 옷 안에서 사람의 몸이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고 그 옷을 통해 인체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철학에 따라 그는 인체곡선을 따라 흐르는 옷을 만들어냈는데 그의 옷은 접착심지와 PAD을 사용하지 않아서 일반 옷의 1/2무게로 옷 한 벌 당 200~500g을 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옷은 자연스러움을 기본으로 낮은 톤의 보색대비와 부드럽고 편한 실루엣, 넉넉하고 단아한 디자인으로 일관하는 탓에 유행을 타지 않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서 전 세계에 매장을 내게 만들었다.

 

그의 옷은 현대적이고 화려하지만 절제되고 차분한 재킷으로 기술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탓에 보통사람에게는 스타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스타에게는 보통사람의 기분을 맛보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아르마니의 디자인은 패션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여성복, 남성복, 스포츠웨어는 물론 시계, 가구, 향수, 화장품 등으로 꾸준히 사업을 확장하면서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에 버금가는 숭배받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그는 한곳에 안주하는 것은 스스로를 배신하는 일이라며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혁명가다. 나는 과장, 억지, 거짓된 열광 따위를 참지 못한다.”

 

아르마니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흰머리에 선텐을 한 붉은 얼굴,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로 정력을 과시하며 지금도 현역에서 뛰고 있다. 최근 아르마니는 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합작품인 ‘아르마니/파브 TV’를 선보이기도 했다.

 

 

<중소기업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