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

마르가리타

부산갈매기88 2012. 8. 22. 07:34

꼽추 소녀의 잇따른 아픔과 고통들

사람이 세운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그는 준수한 소년이었고 키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였다. 사람들은 그를 만족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만한 그를 버리셨다. 이후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될 사람을 기름 붓기 위해 이새의 집을 찾았다. 사무엘은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자 마음에 매우 흡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이새의 일곱 아들을 모두 제치고, 막둥이 다윗을 선택하셨다. 다윗을 선택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탈리아의 한 볼품없는 작은 소녀를 선택하셨다.

출생과 짙은 어둠의 그림자

 

마르가리타는 이탈리아 플로렌스 공화국 메톨라성의 성주 파리지오와 에밀리아의 사이에서 첫째 딸로 출생하였다. 젊고 매우 유능했던 성주 파리지오는 아름다운 아내 에밀리아가 임신을 하자 건강한 아들이 출생할 것을 기대하였다.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여 아주 성대한 잔치를 열고자 계획하였다. 그러나 막상 태어난 아기의 모습을 본 순간 파리지오는 크게 충격을 받았고 모든 잔치를 취소하였다. 아기는 여자 아이였고, 매우 흉측하게 생긴 기형아였다. 꼽추요, 소경이요,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짧은 기형이었다. 더구나 추녀였다.

 

파리지오는 아기가 너무 병약하게 태어나서 얼마 살 것 같지 않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아기의 유모를 정하여 아기를 양육하되 절대로 외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아기는 기형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였고 마르가리타(진주)라는 아름다운 이름도 하녀가 붙여주었다. 그런데 마르가리타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장하여 신실한 믿음과 매우 총명한 아이임이 점차 드러나게 되었다.

 

다섯 살 때 총명한 마르가리타는 메톨라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알았고, 성의 여러 갈래 길과 건물의 복도를 사람의 도움 없이 찾아서 돌아 다녔다. 마르가리타는 모든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갔는데, 그 성 안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곳은 부모님의 숙소뿐이었다.

 

어느 날 여섯 살 때 기도하러 소성당으로 가던 마르가리타는 손님으로 메톨라 성을 찾아 온 어느 귀부인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잘못하면 아이의 정체가 외부인에게 드러날 뻔하였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아버지는 어린 딸을 성에서 반마일(약 800m) 떨어진 숲 속의 빈 성당에 독방을 만들어 그 방에 가두고 출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성 안의 사람들은 어린 딸을 마치 흉악한 범죄자나 위험한 나병환자 또는 정신병자처럼 격리 수용한 성주의 비정한 행실에 치를 떨었지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린 마르가리타는 음식을 나르는 유모와 자신을 위해 특별히 찾아오는 사제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절대적인 고독 속에 13년의 세월을 숲 속의 좁은 독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마르가리타가 독방에 갇힌 그날 사제가 마르가리타를 찾아 갔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부님, 오늘 아침에 부모님이 저를 이곳으로 데려왔을 때 왜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오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 제게 그것을 분명하게 알려주셨어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로부터 부인 당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제가 주님을 좀 더 가까이 따를 수 있도록 똑같이 취급당하도록 하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 신부님! 저는 하나님께 그토록 가까이 갈만큼 착하지가 않아요.”

매임 속에서 얻는 값진 보화들

 

마르가리타는 여섯 살의 어린 나이였고 자신의 부족한 조건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버림 받고 세상과는 완전히 격리된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슬픔과 환난 가운데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인내를 배웠고, 그토록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갔다.

 

마르가리타는 숲 속 성당의 독방에서 13년을 갇혀 지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볼 때 절망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가리타가 이 엄청난 불행을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카스텔로 사제와의 만남이었다. 사제의 가르침은 마르가리타를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그것은 그녀의 외모로 인해 부모의 잔인함과 멸시와 천대로부터 지켜주는 능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마르가리타의 성격에서 우울한 구석은 전혀 없었고, 그녀는 명랑하고 쾌활했다.

 

둘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세상과 격리된 마르가리타는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단순히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가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임을 깨달았고, 그 뿐 아니라 자신의 불행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마르가리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불행과 고독을 즐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두 가지를 힘썼다.

 

첫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둘째는 엄격한 극기생활이었다.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였고 고행복(몸에 고통을 주는 불편한 속옷) 입기를 즐겼다.

더 깊은 고독 속에 던져진 마르가리타

 

마르가리타가 독방에 갇힌지 13년이 지났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 우르비노의 몬테펠트로가 마르가리타의 부친이 성주로 있는 메톨라 성이 속한 마사 트라바리아를 침략해 온 것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을 알았을 때 마르가리타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조국과 부친을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기도하였다. 보통의 믿음을 가진 사람 같으면 자신을 13년 동안 가두어 버린 부친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토록 고통스런 삶, 버려진 인생이 어떻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가 있겠는가?

 

마르가리타의 부친 파리지오는 전쟁의 와중에 성 밖에 가두어 놓은 자신의 딸이 적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 두려워 마르가리타를 비교적 후방에 있는 메르카델로 성으로 데려가 그 성의 지하실에 가두어 버렸다. 지하실에는 초라한 침대와 낡은 의자 하나 밖에 다른 가구는 없었다. 새 감옥의 규칙을 짤막하게 통고 받았다. “음식은 하루에 두 번 제공된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식사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큰 소리로 사람을 불러서는 안 된다. 항상 조용하게 지내야 한다.” 전에는 사제의 방문과 격려가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사제를 전혀 만나지 못하고 온전히 고독한 환경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마르가리타의 모친은 카스텔로의 성당의 지아코모 수사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기적을 체험하는 일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이야기를 남편 파리지오에게 전했을 때 파리지오는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으나 나중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른 아침 파리지오는 자기 아내와 마르가리타, 그리고 열두 명의 말을 탄 호위병들과 함께 하루거리인 카스텔로까지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달려갔다. 밤이 다되어 목적지에 도착한 마르가리타의 부모들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아침에 마르가리타를 데리고 카스텔로의 성당으로 갔다. 파리지오는 마르가리타에게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하고는 아내와 함께 느긋하게 시내 구경을 하고 그 날 저녁 무렵 성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파리지오의 기대는 무너졌다. 여전히 흉측한 모습을 한 마르가리타는 무덤 앞에서 기도만을 하고 있었다. 파리지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메톨라 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마르가리타는 그날 밤 성당을 지키는 수사의 도움을 받아 성당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졸지에 거지신세가 되었다.

 

얼마 안가서 낯선 거지에 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장애를 가진 딸을 낯선 땅에 버린 부모를 사람들은 비방을 하였다. 그러나 마르가리타는 “그분들은 저를 이십 년 동안 돌봐 주셨어요. 그 분들이 평생 저로 인해 짐을 져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제가 스스로 자립할 때이고 그것은 바로 제가 원했던 것이에요.”라고 말하였다.

 

마르가리타는 거지들의 도움을 받으며 구걸을 하였다. 그러다가 가난하지만 마르가리타를 동정하는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며칠 씩 돌아가며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마르가리타를 돕는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타났다. 가정의 화목과 물질적으로 복을 받게 되었다. 그 후 마르가리타는 카스텔로에 있는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녀원에서는 마르가리타를 불쌍히 여겨 심사숙고한 끝에 받아들였다. 수녀들은 마르가리타를 받아들이면 그녀를 돌보기 위해 많은 고생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수녀들은 마르가리타와 함께 지내면서부터 깜짝 놀랐다.

 

마르가리타는 수녀원의 낯선 방과 복도에 빨리 적응을 하였고, 자신의 일을 혼자서 처리하였다. 방청소, 식사 돕기, 설거지 등 많은 일들을 처리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마르가리타로 인해 수녀원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르가리타는 수녀원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하지만 다른 수녀들은 틀에 박힌 수녀원 생활의 타성에 빠져 생활규칙을 잘 지키지 않고 적당히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철저히 영성생활을 하는 마르가리타를 보자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수녀들은 마르가리타를 매우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장애자로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오히려 자신들보다도 훨씬 더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자, 점차적으로 그녀가 부담스러워졌다. 어느새 마르가리타는 수녀원 안의 미운오리새끼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느슨해진 영적 삶을 회복시키려한 것이 아니라 합세하여 마르가리타를 무분별한 사람으로 비방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르가리타는 수녀들의 원망과 불평 속에 수녀원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으로 정죄 받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카스텔로 지역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수녀들의 말만 듣고 수녀원에서 쫓겨난 마르가리타를 비방하고 핍박하였다. 하지만 수개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마르가리타의 빛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산 위로 솟아오른 등불

 

수녀들은 마르가리타에 대하여 서슴지 않고 비방했지만, 정작 마르가리타는 수녀들을 비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변호해 주었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을 침묵으로 견뎠다. 비판은 또 다른 비판을 낳는다.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기보다는 차라리 침묵을 지키든가 아니면 축복을 빌어주자(마7:1). 침묵은 화평을 가져오고, 이웃을 향한 긍휼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을 수 있다. 결국 카스텔로의 주민들은 잘못이 수녀원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부당한 핍박을 침묵으로 견딘 마르가리타를 더욱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4-16).

 

얼마 후 마르가리타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만텔라테’라고 불리는 여자 제3수도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텔라테가 된 후 마르가리타는 그 믿음이 더욱 성숙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매일 밤 철야기도를 드렸다. 특별히 회개를 힘쓰는 가운데 자신을 채찍으로 때리기까지 하였다. 이는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을 쳐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철저히 못 박고자 함이었다(갈 6:9; 고전 9:25, 27). 훗날 마르가리타가 소천하였을 때 사람들은 마르가리타의 어깨의 흉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영혼을 치료하는 간호사

 

마르가리타는 병자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위로해 주고 기도해주는 등 일종의 호스피스 사역을 실천하였다. 마르가리타는 여러 가정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마르가리타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마다 주님으로부터 영적으로 큰 유익과 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났다.

 

그녀는 인생 말엽에 마지막으로 귀족 벤투리노의 가정에서 지냈다. 벤투리노는 마르가리타에게 좋은 방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겸손과 가난, 오직 영적으로 고상한 삶만을 추구하는 마르가리타는 좋은 방을 마다하고 가장 작고 불편한 옥탑방으로 옮겨 갔다. 이 집에 거하는 동안 마르가리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의 은사를 발견하게 된다. 세상의 학문을 배운 적이 전혀 없는 마르가리타는 벤투리노의 아들들에게 논리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 라틴어 문법 등의 공부를 가르쳤다. 그뿐 아니라 150편의 시편 전체를 모두 암송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른 그녀는 이 땅에서 이미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히6:5). 마르가리타는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죄수들의 감옥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충만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며, 기도를 해주며 영적인 위로를 주었다.

 

어느 겨울 날 벤투리노 가정에서 불이 났다. 이때 집안에 머물고 있던 마르가리타는 불길 속에 휩싸여 죽음에 직면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놀랍게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 안에 있는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평화가 있었다. 자신의 외투를 받아서 불길 속으로 던지라고 소리쳤다. 마르가리타는 검은 망토를 아래층으로 던진 후 다시 다락방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마르가리타의 망토를 받은 사람들이 불길 속으로 그 망토를 던졌을 때 성난 불이 즉시 꺼져버렸다.

 

어떤 날은 마르가리타가 깊은 기도 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닥에서 약 20인치 정도 떠서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부상(浮上)의 현상은 극히 일부 성자(聖者)들의 기도생활 중에 발견된다. 이는 마르가리타가 고차원의 영적 수준에 도달한 분임을 알 수 있는 증거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흉악한 죄수까지도 마르가리타의 기도와 사랑으로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녀는 비록 수많은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영혼의 장애를 가진 많은 이들을 치료한 영적 간호사였다. 마르가리타는 매순간순간 철저한 회개생활과 성찬을 통하여 더욱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가지려 최선을 다하다가 1320년 33세의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주님의 완전하심을 드러낸 삶

 

마르가리타가 죽었을 때 수도원장은 수도원으로 시신을 모시려 했으나 시민들은 교회에 안장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장례행렬이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추어 있었다. 그때 어느 부모가 벙어리요 척추 이상으로 걷지 못하는 딸을 데리고 왔다. 장애 소녀의 부모는 마르가리타의 시신 옆에서 딸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도 함께 기도하였다. 그 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죽은 마르가리타의 왼팔이 움직이며 어린 불구 소녀를 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구 소녀가 아무 도움도 없이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목도한 군중들은 기쁨으로 거의 광란상태에 빠져버렸다.

 

마르가리타의 시신은 군중들의 소원대로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카스텔로의 맹인학교의 유리석관 속에 있는 마르가리타의 시신이 오늘날까지도 썩지 않고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르가리타가 소천하신지 무려 686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시신이 부패되지 않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시기 위함일 것이다.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시18:25). 버려짐, 고독과 외로움, 모욕과 멸시와 천대 속에서 거룩함을 이루어갔던 마르가리타. 분명 많은 환난과 시련은 그녀의 영혼을 담금질하는 값진 진주였다.

 

말세지말에 죄가 관영하고 사랑은 식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혼돈된 가치관으로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또한 주님의 일군으로서 무엇을 힘써야 하는가?
우리도 마르가리타처럼 자기를 부인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그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밀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주님과의 깊은 만남은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항상 감사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는 삶의 원동력이다. 또한 이를 통해 사명을 주님의 방법과 능력으로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가리타의 믿음과 삶은 우리에게 참으로 값진 보화이며 진주다. 그녀는 육신적 장애로 비록 보잘 것 없고 연약하고 못생긴 추녀였지만, 영적으로는 진주와 같이 아름답고 가장 건강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딸이었다.

 

오늘날 겉모습은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영적으로 병들고 우매한 삶을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 젊음과 시간을 허비하고 헛된 세속적 부귀와 영화를 사모한들 무엇 하랴? 뜬 구름과 같은 이 세상을 좇지 말고, 인생의 참 행복을 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자.

 

강태형 목사(은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