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동백역~옥녀봉~중봉~장산 정상~기장 산성산~쌍다리재 산행기

부산갈매기88 2012. 12. 18. 09:59

*일시: 2012. 12. 15(토). 흐림. 안개 짙음

*산행자: 부산백산 산악회원(즐거운 산행, 봄산 부부, 남부군, 부산갈매기)과 함께

 

*산행코스(시간):동백역(10:01)-군부대철조망(10:42)-옥녀봉(383m) (11:16)-중봉(11:35)-장산(12:08)-억새밭 갈림길(13:30/점심식사 40분)- 기장산성(15:33)-영락동산공원(16:04)-쌍다리재(16:10)

 

*산행시간: 6시간 10분(점심식사 40분, 휴식 30분 포함)

*교통: 지하철 2호선 동백역 하차. 귀가시 영락동산공원에서 반송 안평역까지 버스 36번, 183번

 

*산행 tip:

이번 산행은 지하철 2호선으로 접근을 하여 옥녀봉, 중봉, 장산을 오른 다음 기장 산성을 지나 영락동산 공원까지 가는 안개 속의 산행이었다. 동백역 2번 출구를 지나 7번가 피자 가게 돌아서면서 산행 들머리가 시작된다. 해운대 도심지 가까이 있기에 등산로는 널찍하고 잘 닦여져 있어서 신바람나게 오를 수 있다. 들머리에서 30분 정도 가면 낮은 구릉 위의 산불초소가 나타나고, 그 봉우리를 살짝 내려서면 돌탑들이 양쪽으로 도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의 잔영들을 쌓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나간 자리에 뭔가 흔적을 남겨 두고 싶어하는 역사지향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천천히 산허리를 감싸듯이 돌아가면 해운대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북동 방향으로 늘어선 아파트들이 안개 속에 희미하게 들어온다. 등산로는 오솔길이라 정감이 넘치고 발걸음도 가볍다. 그런데, 7~8분도 가기 전에 53사단의 철조망이 산의 정감과 정막을 한 번에 허물어버리게 한다. 이 시대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벽이 그 철조망 끝에 매달려 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산 길을 조금 오르니 다시 오솔길이 나타나며 조금씩 경사가 심해져 간다. 숨이 가슴에 턱 차오른다. 즐거운산행님과 오늘 첫 산행을 한 남부군님은 안개 속에 사라져버린다. 안개는 10미터 앞의 물체도 제대로 식별이 안 되어 뿌옇게 흐려져 있다. 1시간 15분 만에 옥녀봉에 도착을 했다. 힘겨운 산행은 아니었지만 온통 주위가 안개로 뒤덮여 있어 위로 올려다 볼 수도 없고, 내려다 보지만 어딘지 분간할 수조차도 없다. 어쩌면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의 인생과도 같지 않을까. 자신이 인생의 최정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 좌표가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잘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우리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 말이다.

 

산행꾼이라면 주위에서 들어봄직한 옥녀봉. 그 옥녀봉에서 즐거운산행님이 가져온 토종 요구르트(?)로 목을 축인다. 잠시 땀을 딱으며 옥녀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한 컷을 한다. 그 한 장의 사진에 1시간 이상이나 걸어온 맘이 녹아든다. 그런데 우리 일행 앞 바위에 앉아 있던 노인이 오른손을 살짝 펼쳤다. 그러자 제비 비슷한 색깔의 새가 노인의 손에서 옥수수를 한 톨 입에 넣더니 바로 옆으로 쌩 하니 날아가버린다. 너무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아마 그 새는 노인이 집에서 기른 새이거나 아님 그곳에서 먹이를 주어 길들인 새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 노인네가 범상치 않다. 새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니 말이다.

 

이제 중봉을 향해 10여 분 올라가는데 경사는 더욱 심해졌다. 너덜 바위를 오르고 올라 중봉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안부의 체육시설을 지나 장산의 정상으로 오른다. 산 능선은 더욱 가파르고 지난 겨울에 불에 타버린 소나무들은 베어지고 새로이 1미터 높이의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무 위에서 맺혀 있던 물방울이 떨어지나 했는데, 갑자기 비가 한 두 방울씩 정도가 심해진다. 마음의 갈등이 순간 파도처럼 일렁거렸으나 이 대자연에 안긴 행복한 순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초연하기로 했다. 하늘의 선물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2시간 남짓 걸려 장산 정상에 오르니 운무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석 앞에 인증 샷을 위해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우리 일행도 다른 일행의 사진 촬영이 끝나는 것을 기다려 몇 컷을 했다. 장산에는 과거 세 번 정도 왔었지만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기는 처음이다. 정상에는 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기에 정상 표지석이 없는 줄로 알았고, 함께 간 일행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았기에 몰랐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지나간 발자취를 남기고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게다가 요즘에는 자신의 블로그나 자신만의 스마트폰 공간에 남겨두기를 좋아하기에 정상 사진은 꼭 찍는 것 같다.

 

어느 덧 12시가 훨씬 넘어서니 생체 시계의 자명종이 올린다. 즐거운산행님은 억새밭 갈림길까지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일행은 장산 표지석을 떠나 정상 왼쪽으로 돌아 북쪽으로 나아갔다. 이제 산길은 인공미가 별로 없는 자연 그대로의 길이었다. 간밤까지 비가 온 탓에 길은 제법 질퍽거렸다. 오락가락 하던 빗방울도 멈췄다. 도랑 사이로 물소리가 들린다. 하얀 안개가 자욱한 산 속에서 들어보는 초겨울의 냇물 소리, 간간히 나타나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그 안개 속에서도 빠알간 속살을 드러내는 망개 열매, 모든 게 오늘 이 시간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행복하다. 즐겁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 온다. 내 앞에는 즐거운산행님과 남부군님이 가고, 내 뒤에는 봄산님 부부가 조금 뒤쳐져 따라온다.

 

갑자기 군 부대의 철조망이 나타났다. 그리고 철조망에는 과거 지뢰지대로 지뢰가 제거되었다고 하지만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순간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다. 그 철조망을 돌고 돌아 억새밭 갈림길까지 왔다. 빈 터 잔디밭에 즐거운산행님이 깔판을 깔아서 점심 먹을 준비를 한다. 안개 속의 식사. 그 대자연 속의 멋진 식사. 도심지에서 식사를 위해 이런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냥 공짜로 하늘이 만들어 주었다. 즐거운산행님이 따라주는 토종 요구르트(?)에 혀가 휘감기고, 봄산님이 가져 온 매실주 한 잔에 온 전신의 피로가 다 풀리니 한기가 다 사라진다. 40여 분간의 100만불 짜리 운무 속의 식사가 끝이 났다.

 

이제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가 장산 너널길이라고 씌여진 표지판을 따라 내려갔다. 헬기장을 지나 전망대 위에서 단체 사진도 다른 일행에게 부탁을 해서 찍었다. 우리 일행에게 사진을 찍어 준 아줌씨는 앞서 다른 일행에게서 사진 도우미 해주고 받은 귤 한 개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자그마한 것 하나에 감동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큰 것에 큰 감동을 받기 보다도 아주 사소하고 예상치 못한 것에 큰 감동을 받는 것 같다.

 

기장 산성으로 가는 도중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사는지는 몰라도 소도 키우고, 채소도 가꾸며 사는 외딴 집이었다. 일행은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1km 떨어진 기장산성으로 향했다. 조금 가다가 남부군님은 약속이 있다고 하여 다른 길로 내려가고, 우리 넷은 임도를 따라 갔다. 길은 널따랗고 많은 낙엽들이 깔려 있어 초겨울의 우수에 잠기게 했다. 축축한 낙엽은 바스락거리지도 않아서 좋았고 발목에 무리를 주지 않아서 기분이 상쾌했다. 일행은 기장산성의 정자에 앉아서 10여 분간 휴식을 취했다.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람끼리 이마를 맞대고 자연에 마음을 여니, 그 자연이 우리의 가슴에 들어앉았다. 세상의 물욕이 잠시 제 자리를 잃어버리고 길을 떠났다. 영락동산까지의 하산 길은 산등성이의 낙엽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었으나 50여 미터 가파른 곳도 있었기에 후미에서 봄산님 부부가 다정스럽게 내려온다. 그 기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조금 빨리 내려와서 기다렸다. 영락동산의 수많은 무덤을 본다. 화려하게 한 시절을 살다간 분들은 말이 없다. 묘비 앞에 놓인 조화만 화려할 뿐이다. 봄산님과 나는 쌍다리재에서 반송으로 36번 버스를 두 정거장 타고 와서 안평에서 지하철 4호선으로 갈아타고 집으로 왔다.

 

지금 아이들이 거의 다 성장해버려 부부 둘만 덩그런히 남은 백산님들도 많을 것이다. 자식은 중고딩까지의 품 안의 자식. 그 이후의 자식들은 이제 방목을 해야 하기에 정 떼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부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고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백산인의 산행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의미있는 몸 놀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 든 남자는 차츰 친구가 없어져 술만 늘고, 여자는 자식으로부터의 해방이 되고 나서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집안 공기는 차가워져 가는 게 현실이다. 오늘 낙엽을 떨군 나무가 이 겨울에 홀로 서 있는 이유를 깨닫고 간다.

 

함께 한 네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안개 속에서도 자신만만하고 즐겁게 가이드를 해 준 즐거운 산행님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