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충북 영동 천태산(714.7m) 산행기 (2013. 6. 8)

부산갈매기88 2013. 6. 13. 08:54

◈산행지: 충복 영동 천태산(714.7m) 산행◈

♣산행일시: 2013. 6. 8(토) 갬

▶산행자: 부산백산산악회원 및 게스트 포함 44명(백산남친, 바람숙, 운해, 와니, 방랑자, 윤슬, 와석, 청림, 은수, 즐거운 산행, 서희, 산들바람, 피네, 해월정, 시골사람, 토끼, 민첩거북이, 노홍철, 천재, 바이올렛, 김상규, 영원한 부산, 태영, 종현, 태평양, 마로라, 효리, 한사랑, 해곤, 성길, 김운학, 우현, 영권, 동진, 박영보, 최준기, 부산갈매기 외)

 

 

♧산행코스(후미 기준): 주차장(11:33)-용추폭포(삼단폭포)(11:45)-영국사(11:51)-A코스-천태산(13:20)-D코스 전망바위(14:42)-남고개(14:56)-영국사(15:18)-망탑봉(15:32)-주차장(16:12)

♤산행시간: 4시간 45분(점심시간 30분, 기타 휴식 45분)

☞교통편: 부산백산산악회 전용버스/강남고속관광버스

 

 

♣산행 tip: 이번 산행은 산림청 100대 명산 82위(인기 명산 39위)의 충북 영동의 설악산이라고 불리는 천태산(715m)에 다녀왔다. 경남 양산에 있는 같은 이름의 천태산(631m)도 그 자태와 등산로가 만만치 않은데 충복 영동의 천태산 역시 산꾼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동의 천태산이 산행인들의 사랑을 받고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수 있는 것은 천태산으로 오르는 힘겨운 암벽 외줄타기 코스 때문일 것이다. 빡빡한 삶 속에서 나 자신의 인생좌표를 읽으며 땀 흘리고 로프를 잡을 때 진정한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코스는 많은 시간을 소요되지는 않지만 대체로 암벽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산행코스는 주차장에서 영국사를 거쳐 암벽을 타고 천태산으로 오른 후 남쪽 능선의 헬기장을 지나 남고개를 넘어 영국사에 도착한다. 그리고 망탑봉을 거쳐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산행은 끝이 난다. 전체 산행 코스는 6km가 되지 못하나 암벽을 타고 올라야 하기에 허투루 생각할 수 없는 만만찮은 코스로 체력을 다소 요한다.

 

 

♣주차장~영국사

부산 덕천동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 만에 영동의 영국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한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벌써 타지에서 온 관광버스가 예닐곱 대 세워져 있고 승용차도 많이 보인다. 하차한 백산회원 및 게스트 44명은 운해대장님의 구호에 맞춰 5분여 몸 풀기를 해 본다. 그리고 산행 들머리의 등산 안내판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 한 컷을 한다. 인증샷이 끝나자마자 경마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말 기수가 달려 나가듯이 냅다 걷기 시작한다. 잘 포장된 길을 5분여 올라가니 <천태산 계곡>이라는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포장도로 양 옆에는 현수막에 여러 시들이 즐비하게 적혀 있어 오가는 이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영국사 700m, 정상 2,200m>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반긴다. 이제 자연 그대로의 돌길과 인위적으로 만든 나무계단을 오른다. 영국사까지는 5분 여 계곡을 따라가야 한다. 좌우 양옆으로 큰 바위와 암벽이 도열을 하고 있다. 거대한 바위들과 나무 그늘 속을 걷게 되어 다소 압도되는 느낌이다.

 

삼신할멈바위를 돌아서 조금 가면 삼단폭포(용추폭포)를 왼쪽에서 만나게 되지만 수량이 많지 않아 좀 허탈한 느낌이 든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어 영국사 매표소까지 간다. 입장료가 1천원이란다. 바로 건너편으로 영국사의 은행나무가 먼저 고개를 내민다. 그 은행나무가 천년을 버티어 왔다고 하니 오랜 세월의 인고로 지탱해 왔다.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일행들은 무엇보다 그 오랜 세월의 희로애락을 간직한 은행나무 앞으로 달려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높이는 32m, 둘레가 11.54m 정도이지만 그 세월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포즈를 취해 본다. 게다가 오랜만에 보는 회원 간의 우정이 그 은행나무를 매개로 해서 뭉쳐지고 어깨를 맞부딪혀 본다. 웃음소리가 은행나무 이파리 위에 얹힌다. 은행나무 가지는 늘어져 땅으로 쳐진다.

 

 

♣영국사~암벽~천태산 정상

영국사에서 정상은 A코스의 암벽등산을 택하기로 한다. 절에서 100여 미터 오른쪽의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니 <천태산 등산로 입구 A코스 1,370m>라고 쓰여진 안내판을 만난다. 거기서 본격적인 A코스의 들머리이다. 나무계단을 오르니 완만한 등산로가 시작된다. 그리고 타지에서 이곳을 다녀 간 산꾼들의 리본이 나뭇가지에 많이 매달려 있어 산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고도를 조금씩 높여 감에 큰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75m 암벽을 타기 전에 100미터 구간에 몇 단계의 암벽을 순차적으로 올라야 한다. 다행히 암벽들이 정상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있다는 점이 위안이다. 처음 100여 미터 구간의 몇 개의 단계에 걸친 워밍업은 암벽 경사가 대체로 완만하여 소화해 내기가 수월하다. 다만 앞 사람이 오르기까지 밑에서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로프를 잡고 오르는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다짐도 해 본다. 100여 미터의 구간을 오르면 영국사를 조망하면서 쉴 수 있는 전망바위 위에서 청림님, 노홍철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고 벌렁 누워 본다. 그 암벽 끄트머리에는 40대 여인의 젖꼭지 모양에 정으로 찍어 놓아 누가 보아도 여인네 유두로 보인다. 그 암봉에 올라서 영국사 방향으로 내려다보니 짙은 신록 속에 아스라이 보인다. 그리고 셋이서 숨고르기도 해 본다. 땀과 고통이 우정을 달군다. 이미 일행들은 앞서 다 암벽을 올라 위에서 조망을 하고 있다.

 

이제 점차 암벽을 따라 산 중턱쯤 고도를 높여가니 암벽은 더욱 직벽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앞에 턱 하니 가로막는 높다란 암벽이 나타난다. 앞서의 암벽 타기가 워밍업 정도의 수준이었음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인생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떨결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정말 앞서 20여 분간의 워밍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러운지. 그래서 75m의 암벽 타기는 보다 긴장감이 높긴 하지만 준비된 가운데서 오를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 긴 암벽을 타기 위해서 인원이 많은 관계로 오르는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엄청 더 소요된다. 20여 미터의 암벽을 먼저 올라 한 숨을 돌린 후 또 다시 50여 미터의 암벽 외줄타기를 비스듬하게 11시 방향으로 타야 한다. 외줄은 홀로 타야 하기에 누군가 대신해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인생이 자신의 책임 하에 움직이듯이 기나긴 암벽 또한 자신의 역량껏 타고 올라야 하는 것이다. 왜 굳이 이 어려운 일을 자청하고 있을까?

 

20여 미터 암벽 위에서 피네님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로프 잡는 사인을 보낸다. 여자 회원님들도 정말 기가 죽지 않고 잘 오른다. 남자대원들의 배려로 여자 회원들이 먼저 오르고 사이사이 남자 회원들이 암벽을 타기 시작한다. 후미조는 청림님, 나, 그리고 노홍철님만 남았다. 먼저 20여 미터를 오르는 동안 가슴에 땀이 쏟아진다. 그리고 다시 50여 미터 구간을 오를 때에는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가슴에 땀이 많이 흘러내린다. 날씨는 무더워 팔에 힘이 빠지고 버틴 다리는 조금 떨려온다. 나 홀로 이 로프를 타겠다고 했다면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함께 하는 동료가 있기에 힘이 난다.

 

왜 이 산을 찾아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암벽을 타고 오르노라면 풀린다. 보통 사람들은 가보고 싶은 산. 그 산이 있어서 산행에 참가한다. 그 산이 주는 하드웨어적인 요소가 마음에 끌리는 것이다. 산들이 주는 매력과 마력에 끌리는 것이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 컴퓨터의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에 더 끌리듯 산악회에 가입한 후부터는 회원 간의 정. 그 소프트웨어인 정에 끌려서 산행에 오게 된다. 그리고 산의 하드웨어적인 요소와 함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소프트웨어에 이끌리어 오는 산꾼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하드웨어적인 산만을 찾기 위해서 오는 산꾼이라면 아직 진정한 산꾼이 깊은 맛를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산꾼의 우정과 의리는 땀과 눈물, 고통과 웃음을 동반한 소프트웨어가 가미될 때 빛을 발하지 않을까. 백산에서 그 소프트웨어적인 요소가 많이 용해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백산의 분위기에 젖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75미터 암벽을 타고 오른 후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그게 정상이 아니라 정상 아래에 있는 한 봉우리라는 사실에 조금은 허탈해진다. 그래도 그 봉우리는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숨 고르기에 정말 좋다. 게다가 경치마저 좋기에 지나가는 새마저 내려 앉아 지저귄다. 일행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보기도 하고, 또 어깨를 견주어 보기도 한다. 땀으로 우정의 무게를 보탠다. 함께 격려해주는 한 마디의 말에 피로가 다 풀린다. 눈이 떠진다. 그리고 누군가가 들이대는 카메라에 땀범벅이 된 얼굴일지라도 한바탕 웃음으로 바위를 깨운다.

 

정상은 아직 멀었다. 그 봉우리에서 400여 미터 이상은 남아 있기에. 이제 산길은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암릉을 따라 올라간다. 그리고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역시 거기도 정상이 아니다. 서쪽으로 200여 미터를 갔다가 내려와야 한다. 늘 그러하듯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정상을 산꾼들에게 쉽게 내어주는 법은 없다.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산꾼들로 인산인해다. 사투리가 이곳이 타향임을 실감케 한다. 등산로는 너덜길이라 신경이 쓰인다. 천태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우리 회원들이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타지에 온 일행들은 목이 타는 표정이다. 여전히 청림님은 회원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야단이다. 잠시 타이밍을 놓쳐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하려 해도 타지에서 온 산행팀이 독차지해버려 어쩔 수 없어 그들과 함께 한 정상석 인증샷만 남긴다. 그 북새통 속에 노홍철님이 얼른 샤터를 누른다.

 

 

♣정상~D코스~영국사

이 능선에 오르기 전 점심 식사를 위해서 정상 바로 아래의 널찍한 능선에 앞서 간 선두조의 방랑자와 일행이 자리 잡고 있다고 운해님에게 무전 보고가 있었다. 선두조들은 여기저기 십여 명씩 자리를 잡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맨 꼴찌로 도착한 나와 노홍철님은 서희님, 은수님의 옆 자리에 앉는다. 오늘 나는 본의 아니게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지 못했다. 회원 한 사람이 내 대신 점심을 준비해 온다고 하였는데, 아뿔싸 아침에 갑자기 장례식이 생겼다고 댓글이 달려 있다. 그 댓글을 서면KT 앞에 출발하기 전 10분 전에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서희님과 은수님에게서 십시일반으로 밥을 얻는다. 온갖 반찬이 식욕을 돋우고 주위 일행의 관심과 사랑에 배가 부르다. 오늘은 운해대장님의 금주령 덕분에 일행들이 술을 자제하는 듯 하다. 밥을 채 다 먹지 않았는데 선두조들이 식사가 끝났는지 벌써 하산을 하러 일어선다. 그때 능선 바로 아래 헬기 소리가 요란하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니나 다를까 타지에 온 아줌마 한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졌단다. 두 달전의 양산 천태산 번개산행에서 성산님이 발목을 다친 것이 생각났다. 사고가 순간적이고 후회는 영원한 것임을.

 

하산 능선길의 처음은 완만한 길이라 콧노래를 부를만도 하고 간혹 고사목도 보여서 운치를 더해 준다. 또 아래를 조망할 수 있는 암릉도 나타났기에 일행들은 어깨를 맞대어 보기도 한다. 하마의 등줄기 같은 기다란 암릉이 나타날 때는 일렬로 늘어서 서서 사진을 한 컷 해보기도 하고, 오랜만에 온 민첩거북이님과 추억을 남겨 보기도 한다. 그런데 오지랖 넓은 청림님은 양산에서 온 아줌마들과 사진을 찍는다고 부산스럽다. 우리 옆에는 김해와 양산에서 온 아줌마들이 제법 보인다. 군데군데 전망하기 좋은 바위들이 나타나게 되면 삼삼오오 어깨를 붙여서 사진을 찍어본다.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에 웃음과 미소가 공중에 날린다. 전망 바위 사이사이로 수십 년을 버티어 온 소나무들이 지나가는 길손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그 척박한 땅에서 소나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이 준 생명력 보존이라는 명제가 아닐까. 그처럼 힘들고 어려운 우리의 인생도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최대로 활용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와니님은 부지런히 소나무 새순을 따고 있고, 노홍철님은 소나무 가지를 휘어잡아 거들어 주고 있다.

 

남쪽 전망 바위를 끝으로 하산을 재촉한다. 마사토 길이라 조금 미끄럽다. 남고개에 가까운 길은 완만한 등산로라 걷기가 수월한 편이다. 남고개에는 <영국사 900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걸어가면서 노홍철님과 청림님의 주고받는 걸쭉한 입담도 만만찮다. 두 사람은 투수와 포수처럼 죽이 잘 맞는다. 남고개를 돌아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서서 청림님이 얼린 생탁을 꺼내 잔에 따른다. 살얼음이 얼은 막걸리를 입에 대니 이가 시리고 가슴이 짜릿해 온다. 우주론자적인 청림님, 지나가는 아줌마 한 사람에게 막걸리 한 잔 하겠냐고 물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사양을 하지 않고 냉큼 받는다. 막걸리잔을 받은 아줌마의 표정이 환해진다. 오늘도 청림님은 얼음 냉장고를 배낭에 짊어지고 왔다. 얼음주머니 팩에 막걸리를 넣고 다니니 살얼음이 얼 수 밖에는.

 

산길에는 각 지역에서 온 산꾼들로 길이 북적거린다. 영국사에 도착하여 경내를 둘러보고 노홍철님이 수돗가로 가더니 머리를 감는다. 쳐다보기만 해도 시원한 느낌이 전해 오는 듯 하다. 나는 땀범벅이 된 얼굴만 대충 씻어 본다. 기분이 상쾌하다. 아니 살만 하다. 이곳은 공민왕이 홍건적 난을 피하여 이곳에 잠시 머물면서 국태안민을 기원하면서 국난을 극복하였다 하여 영국사(寧國寺)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영국사에는 삼층석탑과 원각국사비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영국사>하면 떠오르는 것이 은행나무다. 은행나무가 천년 사찰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높이 32m, 둘레 11.54m의 은행나무는 서쪽으로 난 가지가 땅에 닿아서 뿌리를 내려 새로운 줄기가 나서 하늘로 향해 자라고 있다. 줄기에서 뿌리가 새로 나왔다고 하니 그 생명력 또한 길지 않은가 말이다. 그 은행나무가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사람들이 더 애착을 가지고 찾아오는지 모른다.

 

그래서 영동 천태산은 그 암벽과 암릉, 천년의 은행나무 때문에 많은 산꾼들이 모여드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715m밖에 안 되는 그렇게 높지 않은 천태산에 오르려면 암벽과 씨름을 해야 한다. 땀을 흘려야 한다.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외롭게 자신의 내면과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자신을 이겨야 한다. 그 무한 가능성의 한계를 외줄타기를 하면서 인생을 곰씹어 보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천태산을 돌아 영국사의 은행나무 앞에서 서노라면 인생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100년도 못 살아 아등바등 하는데 천년 세월을 버티어 온 은행나무에 머리 숙여진다.

 

그 나무에게서 인생의 한 수를 배우고 매표소를 지나 망탑봉으로 오른다. 개울을 지나 된비알을 올라가려니 숨이 턱 막혀온다. 이미 하산하는 길이라고 뇌가 인지하고 있는데,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니까. 망탑봉에는 먼저 온 피네님과 윤슬님 등의 일행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종현님이 나와 노홍철님을 반긴다. 종현님은 상어 모양의 바위 위에 올라가라고 그러면서 사진을 찍어준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이 상어 바위에 올라 얼마나 많은 포즈를 취했을까?

 

그 옆의 망탑봉 삼층석탑에도 서서 사진을 찍어 본다. 그 석탑도 그 자리에서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것이 아닐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일행들과 함께 망탑봉의 남쪽으로 내려가서 개울에 발을 담근다. 물장난을 쳐 보기도 한다. 개울물이 차갑다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한다. 노홍철님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위에서 무좀 씻은 물이 흘러내려간다고 농담을 한다. 모두 한 바탕 웃으며 웃음을 개울물에 흘러보낸다. 암벽과 암릉의 산행이라 점심식사 시간을 빼놓고는 이렇게 많은 일행과 함께 한 적이 없는데, 호사스럽게 시간의 여유로움도 가져본다. 늘 꼴찌에서 맴돌다 허겁지겁 내려오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사랑스런 시간을 갖는다는 게 행복하다. 행복은 물질의 풍요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락함과 평안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거기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니 앞서간 일행들이 족탕을 했는지 부산스럽다. 이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계곡을 내려서면서 큰 암벽 앞에서 영원한 부산님과 어깨를 맞대고 사진을 한 컷 해 본다. 멀리 서울에 계시면서도 늘 백산 카페에 들러 안부를 전해주시고 변함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그 마음씀씀이 백산이 번창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시간이 날 때 이렇게 참석해 주는 정성과 노력에 정말 감사를 드린다.

 

길 가의 금계국 화단에 들어가 은수님, 서희님, 와니님 등이 사진을 찍는다고 야단이다. 꽃이 있으면 벌과 나비가 날기 마련이듯 여자회원들의 몸짓에 남자 회원님들이 둘러싸여 셔터를 눌러대기가 바쁘다. 이제 포장도로를 따라 일행들이 내려간다. 길 양옆에 즐비하게 걸려있는 플랭카드에 적힌 시들을 감상할 여유가 있는지 일행들은 두리번거려 본다.

 

실질적으로 걸은 시간은 3시간 반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다. 6km도 안 되는 거리를 돌고돌아 아등바등하게 용을 쓴 것은 이 산이 예사롭지가 않다는 것이다. 뒤돌아 본 산세를 보니 암벽과 암릉과 눈앞에 아른거린다. 암벽 중간 위에서 기다리며 내려다보던 피네님의 얼굴도 아른거리고, 다른 님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다른 산행에 비해서 일행과 얼굴을 마주친 시간이 적었다. 그만큼 산이 험악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산행의 긴 여운이 참 많이 남는다. 몸이 감당한 고통의 시간이 길었기에.

 

오늘 우리 일행 모두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다치기라도 하면 분위기는 무거워지기 마련이니까. 하산시의 전망 바위까지 금주령을 내린 운해대장님의 지시에 잘 따라주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즐거운 산행을 마쳤다. 그 고통을 동반한 동행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을 만들었다.

 

영동시내에서 동태탕에 막걸리 한 잔에 일행의 피로가 다 풀려버렸다. 오늘도 외쳐 본다. ‘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백산이 좋다!’ 늘 외쳐도 이 슬로건은 참 좋다.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니까. 산행을 위해 운해대장님을 비롯한 운영진과 회원 및 게스트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백산의 정열은 식지 않는다. 여러분의 정열적인 에너지로 백산의 발전소는 돌아가고 있다.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