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부산갈매기의 충북 단양 수리봉-신선봉-남봉-황정산-영인봉 산행기(2013. 6. 22)◈

부산갈매기88 2013. 6. 29. 09:35

♣산행지: 충북 수리봉(1019m), 신선봉(990m), 황정산(959m), 영인봉(825m)

♧산행일시: 2013. 6. 22(토). 흐림

☞산행자: 부산백산산악회 회원 및 게스트 포함 37명(운해, 와니, 숙이, 즐거운산행, 청림, 노홍철, 산들바람, 은수, 솔향, 종현, 햇띵구, 햇살, 산하, 금호지 부부, 김상규, 정은, 흔적, 해월정, 방랑자, 유인, 붉은노을, 태영, 오름산, 박상현, 선초, 송순 부부, 종인, 김동진, 슬로우, 바람그리기, 부산갈매기 외)

 

 

☸산행코스(통과시간): 단양군 대강면 윗점<11:33>-수리봉(1019m)<12:36>-신선봉(990m)<13:08>-남봉<14:58>-황정산(959m)<15:28>-영인봉(825m)<16:32>-사방댐 냇가<17:06>

☞산행시간: 5시간 반(점심시간: 35분, 기타 휴식: 50분, 알탕/족탕: 25분)

               *순수 도보산행 시간: 3시간 40분

♧GPS 도상 산행거리: 6.3km

 

 

♣산행 tip: 지상파 방송국의 애국가 동영상 중에 황정산과 남봉 부근의 아름다운 암릉의 산봉우리가 나온다고 한다. 적어도 그런 동영상에 이 산봉우리들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산세가 백미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소망을 저버리지 않고 잔잔한 여운을 남긴 용 이빨과 같은 암릉(용아릉)을 네발로 더듬어 넘은 산행. 그 능선을 손과 발로 더듬어 넘고 보니 기죽어 초라한 인생도 아직 살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하루였다.

 

 

처음 공지는 경북 문경의 황장산(1,077m)이었지만 보름 전 타 산악회의 산행 사망사고로 인하여 하루 전에 충북 단양의 황정산(959m)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손과 발로 기면서 쉬엄쉬어 5시간 반 정도 땀을 주르르 흘리며 오르고 또 올라 사방팔방을 둘러보고 산행을 하고 나니 일행 모두를 대만족시켰다.

 

 

사실 이 코스는 일반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코스로 등산로도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자연 그대로이다. 이정표가 시원찮고, 외줄 로프도 소나무에 걸쳐 있고, 낭떠러지 암벽이 있는 곳에만 쇠줄로 최소한의 통로를 만들어 놓아 그 쇠줄을 잡고 암벽을 돌아 갈 때는 오금이 저려 온다. 암릉에서 뒤틀리고 뒤틀리면서도 생명을 거부할 수 없어 살아가는 수백 년 된 소나무를 보면서 우리도 살아야 가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리고 일행과 함께 하면서 혼자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하산을 하게 된다. 이번 산행에 동참하신 분은 많이 웃고 떠들고 산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기에 엔돌핀의 4,000배가 넘는 다이돌핀이 엄청나게 생성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아마도 다음 산행에 행복 기부금을 좀 많이 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양 윗점~수리봉(1,019m)

 

 

덕천동에서 마지막 일행을 태운 버스는 3시간여 만에 단양군 대강면의 윗점 국도변에 하차를 하게 된다. 산중턱 높게 올라간 탓에 엔진에 부하가 걸리며 버스도 멀미를 하는 듯 하다. 하차한 일행은 내리자마자 도로에서 짐을 꾸리기 바쁘다. 그러면서 운해대장님이 몸을 풀자고 외친다. 여자 회원님들은 볼 일(?)이 급해서 몇 사람 먼저 들머리로 오르고, 나머지 사람들은 운해님의 구호에 맞춰 몸을 간단히 5분 여 풀어 본다. 도로변의 단풍나뭇잎은 제법 빠알간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고, 우리네 얼굴은 잠깐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벌개져 간다.

 

 

등산 안내판이 서 있는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올라가니 산중턱의 약간 된비알이 나타난다. 대원들의 대오가 길어 다소 느린 걸음으로 호흡을 조절하며 오른다. 숨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7~8분을 오르니 약간 가파른 경삿길에 로프가 걸려 있다. 모두 외줄을 잡고 오른다. 앞서 가던 숙이님이 길을 옆으로 비켜선다. 오랜만에 산행을 하기에 힘이 드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시발점에 불과했다. 산중턱에는 키가 크지 않은 소나무들이 빽빽히 서 있다. 거기서 또 7~8분을 가서 쉴만한 큰 바위들이 나타나 앞에 가던 일행이 걸음을 멈춘다. 누군가 방울토마토를 꺼내서 일행에게 돌린다. 쉬면서 얼굴을 쳐다보며 인사를 건넨다. 바쁜 업무 때문에 오랜만에 온 종현님과 얼굴을 맞대어 본다. 그리고 수리봉 정상의 마루금을 쳐다본다. 정상 아래의 바위들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놓고 유혹을 하고 있다.

 

 

바위 쉼터에서 5분 여의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30도 경사의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폭은 30여 미터, 길이는 80여 미터 되어 보이는 대슬랩이다. 먼저 올라간 운해님이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일행을 안내한다. 경사진 바위 위를 오르기가 힘이 든 일행은 오른쪽의 쇠줄을 잡고 오른다. 대슬랩의 중간에는 외로이 세월을 버티어 가는 소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래서 일행 중 몇 사람은 그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기도 한다. 소나무 모가지는 암벽 틈 사이에서 세월의 무게에 짓눌러 떨어져 나갔고, 옆으로 뻗은 가지 위의 솔잎은 간신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듯 하다. 대슬랩을 지나 그래도 걷기에 수월한 숲속길을 10여 분 정도 오르니 이제는 깔딱고개가 나타난다. 왼쪽에 로프가 걸려있는 100여 미터의 된비알을 오른다. 바닥은 나무뿌리가 계단을 대신해 주고 있는 곳도 있고, 또 어떤 곳은 돌이 물에 젖어있는 곳도 있어 다리가 발 딛기가 망설여진다. 내 바로 뒤에는 오늘 첫 산행에 참석한 송순님 부부가 뒤따라온다. 송순님 부인이 경사지를 조금 무리하게 오른 탓인지 비탈을 다 오른 뒤 조금 휴식을 위해서 옆의 바위 능선으로 간다. 송순님이 부인에게 애뜻하게 걱정해 주는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행복 중의 행복이다. 우리 백산에도 부부산행을 하는 7~8커플이 오는데 점차 커플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제 완만하고 쉴만한 산중턱 능선이 나타나 앞서간 일행이 쉬고 있다. 그리고 오이와 과일을 꺼내어 한 쪽씩 돌린다. 땀은 얼굴에서 소낙비처럼 내리고 누군가가 베푸는 인정에 또 마음에 감동의 단비가 내린다. 들머리에서 출발을 해서 45분 정도 등산을 했다. 능선을 오르다 150살은 넘어 보이는 노송이 있어 그 위에 올라가 운해님과 산들바람님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 본다. 오늘도 운해대장님은 후미에서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제 백산도 그만큼 역할분담을 할 대원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백산이 자리를 잡아간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수리봉 180미터 아래 이정표를 하나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정상 바로 아래에 석굴을 왼쪽에서 보며 돌아 올라가면 바로 수리봉(1,019m)의 정상석이 나타난다. 그 석굴은 무속인들이 촛불을 켜 놓고 제를 올리는 곳이다. 들머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지 않아서 수리봉에서 찍기로 했건만 선두조들은 이미 가고 후미로 온 일행 십여 명만 남아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어본다. 들머리에서 1시간 조금 걸려 수리봉에서 땀을 식힌다. 정산 주위는 키가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제대로 조망이 되지 않는다. 일행들은 용아릉의 용 이빨을 뽑으러 달려가고 없다.

 

 

 

▶수리봉(1,019m)~신선봉(990m)~남봉

 

 

수리봉에서 신선봉(990m) 방향으로 능선을 조금 내려서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그 전망바위는 신선봉과 그 아래의 용아릉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전망바위에서 서니 신선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신선봉 왼쪽의 하얀 암벽사면은 고등학교 시절 머리가 길다고 선생님한테 걸려서 머리 옆면을 바리깡으로 밀려 고속도로가 난 그런 모습이다. 일행들은 전망바위에 서서 폼을 잡으며 개인 사진을 찍기에 부산하다. 저 건너편의 용아릉을 보니 벌써 일행들이 용아릉 바위 위에 올라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암릉이 용의 이빨 모양 쭈삣쭈삣하게 서 있다고 하여 용아릉인데 이번 산행의 백미다. 그 암릉 위에 일행들은 도레미로 올라서서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리고 발 아래에는 수리봉에서 용아릉으로 오르기 위해서 건너가고 있는 일행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전망바위 바로 옆에는 망혼석이 붙어있다. 그 망혼석에는 <황정에서 너는 산이 되었구나 사랑한다 천일아 2005. 5. 29>이라는 글귀가 있다. 얼핏 그 글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이다. 망자가 이 산을 오르다가 죽은 것인지, 아님 산을 너무 좋아해서 이 산에 묻어 달라고 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진정 산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영원히 수리봉과 함께 잠들어 있을 것이다.

 

 

용아릉에서 손을 흔드는 일행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수리봉을 내려간다. 조금 전 본 그 망혼석이 눈에 오버랩 되며 능선 아래로 늘어뜨려진 로프를 잡아본다. 살아있는 자는 또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암릉을 내려다보니 와니님이 외줄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 이제 수리봉과 신선봉 사이의 V협곡을 지나야 하는데, 먼저 20여 미터의 외줄을 타고 암릉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그런 다음 V협곡을 건너기 위해 얼굴 높이의 바위에 걸려있는 20여 미터 길이의 쇠줄을 타고 건너가야 한다. 그런데 그 쇠줄을 잡고 틈새가 뻐끔히 벌어진 큰 바위를 돌아 건너서 내려가야 하기에 여자 회원님들이 오금이 저려 오는지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운해님이 앞서고 그 뒤를 따라 와니님, 산들바람님, 그리고 청림님이 쇠줄을 잡고 큰 바위를 돌아본다. 등줄기에 땀을 후줄근하게 내려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제 큰 바위를 돌아 넘어가면서 운해님과 일행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여전히 내 뒤에는 송순님 부부가 수리봉 아래로 따라 내려오고 있다. V자 협곡을 지나 용아릉을 오르는데 암릉들이라 네 발로 기어오른다. 신선대 아래에서는 쇠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데, 발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겨우 용아릉을 송순님 부부와 함께 올라 신선대 전망바위에서 허리를 펴 본다. 어제 비가 온 탓에 신선대의 두 개 바위샘에 물이 고여 있다. 건너 보이는 수리봉의 사면을 쳐다본다. 아직 건너편에는 붉은노을님, 햇띵구님, 숙이님이 보인다. 오늘 숙이님이 약간 고전을 하는 것 같다. 집안 살림을 하다보면 그 늘어나는 인격과 재산(?)에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듯 하다. 가끔 산행에 참가하려고 마음먹었다가도 행여나 민폐를 끼칠까봐 못 나오게 되니 운동량은 부족하고 그 놈의 반갑지도 않은 재산(?)은 늘어만 가니 몸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숙이님을 위해서 후미에 붉은노을님과 햇띵구님 두 사람이 인간 포터가 되었으니 여왕마마 보필한다고 고생깨나 할 것 같다. 그래도 두 사람이 길동무, 산동무, 말동무가 되어주니 얼마나 좋으랴. 거기에 완전히 백산의 젊은 영계 두 사람 아닌가 말이다. 숙이님 오늘 자신은 암릉을 탄다고 주눅이 들었을지 몰라도 젊은 영계 두 사람의 호위를 받고 있으니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기분 이상일 것이다.

 

 

이제 신선대 옆 넓은 빈터에 먼저 온 일행들이 자리를 쭉 펼쳐놓고 식사를 하고 있다. 신선봉 아래에 널찍한 공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런데 모두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끼일 자리가 마땅하지가 않다. 쭈삣거리고 있는데 노홍철님이 부른다. 게다가 노홍철님이 솔향님과 같이 자리를 하고 있기에 그 옆으로 갔다. 솔향님은 지난 번 대운산 번개산행에 한 번 게스트와 왔었고, 오늘 정기산행은 처음이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이렇게 함께 해 주니 감사할 뿐이다.

 

 

내 뒤를 따라 온 송순님 부부도 그 옆에 자리를 펼친다. 자리에 앉자마자 솔향님이 권하는 토종 요굴트 한 잔을 받아 마신다. 들머리에서 1시간 25분 정도를 걸어올라 시계가 1시가 넘었으니 출출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솔향님은 학교 텃밭에서 손수 재배한 무공해 채소를 가져 왔고, 송순님 부부 또한 갓 담은 배추김치에 채소를 통 크게 싸왔으니 모두 입이 떡 벌어진다. 인생에서 원초적인 먹는 식도락의 재미도 빼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솔향님도 점심때 막걸리 한 병으로 마무리를 하고 다른 한 병은 배낭에 집어 넣는다. 가야 할 길이 낭떠러지와 암릉이 많다는 얘기를 놓고 여운을 남긴다.

 

 

 

▶신선봉(990m)~남봉~황정산(959m)

 

 

늘 그러하듯 재촉하지 않더라도 점심을 먹고 나서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서는 것이 백산의 관례다. 배낭을 메고 일어서니 더 앉아있을 수도 없다. 또 한 가지 식사가 끝나고 커피 타임이 마무리 짓게 되면 노홍철님이 껌을 한 바뀌 돌린다. 그런 다음 바로 갈 길을 재촉한다. 그런데 오늘 처음 온 분이 식사후 더덕 한 포기를 캐 왔다. 더덕잎을 보지 못한 님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본다.

 

이제 식사 장소에서 조금 올라가 신선봉을 올라 조금 내려서니 큰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 오른쪽 절벽 옆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 식사를 하고 20분을 가니 석화봉으로 내려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는 <수리봉1.2km, 황정산 1.9km, 석화봉 0.6km>라고 씌여져 있다.

 

거기서 안부의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400미터의 산길은 그런대로 아주 샤방샤방한 길을 걷게 된다. 숲속을 걷는 기분이 이런 거로구나 하는 느긋함을 느끼게 해주는 산길이다. 유달리 이 산은 소나무들이 많기에 삼림욕을 하기에도 최적인 것 같다. 낮의 기온이 오름에 따라 수풀 내음이 코를 발름거리게 한다. 무엇보다 편백나무와 소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으뜸인데, 이 피톤치드가 스트레스 완화, 기억력 상승, 살균 탈취효과, 자양 강정효과 및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 발표가 있다. 아무래도 백산인들은 체력으로 다져진 몸에다 피톤치드 효과까지 상승작용을 하게 되면 병원 문턱을 드나드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9988234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리라.

 

 

이제 안부를 지났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 남봉으로 오르는 경사길이 시작된다. 간간히 바위 위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어 낸 자그마한 소나무가 버티어 서 있다. 대체로 남봉까지의 사면은 보통 산처럼 밋밋한 산행이다. 기온이 조금 올라감에 따라서 땀도 제법 많이 난다. 안부에서 30여 분을 올라 봉우리에 오르니 <수리봉/황정산>이라는 이정표만 보인다. 누군가 그 이정표 아래에 남봉이라고 적어 두었기에 이곳이 남봉 정상임을 확인케 한다. 일행들은 그 남봉의 이정표 앞에서 인증샷을 날린다.

 

 

남봉에서 15분여를 황정산 방향으로 내려가니 시야가 탁 트인 낭떠러지 옆에 길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그리고 수백 년 된 노송이 뒤틀린 채로 서 있다. 그 바위가 일명 <기차바위>다. 일행은 전망이 너무 좋아서 기차바위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다. 건너편의 산을 조망해 보기도 한다. 그 인근 지역이 지상파 방송의 애국가 동영상이 나오는 곳이란다. 오른쪽 살짝 너머로 석화봉의 능선이 펼쳐져 있다. 그래도 산은 나무만 있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암릉과 기암괴석의 풍광에 노송이 어우러져야 부가가치가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그 바위에는 <추락금지>라는 표지판과 함께 쇠줄이 걸쳐 있다. 사람들은 출입금지라고 하면 더 들어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일행 중 몇 사람이 쇠줄을 넘어 들어가 노송과 주위 풍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청림님이 쇠줄을 넘어 들어가다 다리가 걸려 엎으려져서 하마터면 수십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뻔 했다. 쳐다보는 일행이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이 바위 위에 배가 걸리고 손을 짚어 별 일은 없었기에 함박 웃음꽃이 공간을 갈라 놓았다.

 

 

기차바위에서 황정산 방향으로 3~4분을 가니 앞에서 보면 낙타 모양 같기도 하고, 옆에서 보면 양 같은 바위를 만나게 된다. 노홍철님은 그 바위에 올라서 포즈를 취해 본다. 그리고 다른 일행도 옆에서 올라갈 수 있는지 도전을 해 본다. 거기서 조금 가니 암릉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암봉 위에 소나무 몇 그루들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 받아먹고 자라고 있다. 노홍철님이 그 암봉 위로 올라가고, 이어서 운해님도 올라가본다. 그리고 포즈도 한 번 잡아본다. 암봉 위에서도 그렇게 자랄 수 있는 소나무. 살기 위해서 살은 찌우지 못했지만 소나무 자신의 몸은 거기에 적응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그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한 수 배운다. 고사목이 있는 곳에서 방랑자님과 교대로 자신을 한 컷씩 해 본다.

 

 

이제 황정산 정상에서 운해님을 비롯한 후미조 10여 명이 한 덩어리로 엉켜서 사진을 찍어 본다. 그런데 정상석은 땅바닥에 붙어 있을 정도로 낮으막하다. 그래서 삼삼오오 개인 인증사진을 찍을 때는 쭈그려 앉아서 찍는다. 사람들은 그 환경에 따라 행동이 나오기 마련인 것을 보게 된다. 인증샷을 끝나마자마자 영인봉으로 하산하기에 바쁘다.

 

 

 

▶황정산(959m)~영인봉(825m)~사방댐 날머리

 

황정산에서 10분쯤 영인봉 방향으로 내려가니 너럭바위가 나타나면서 왼쪽 입구에 소나무가 큰 황소마냥 널브러져 있고, 오른쪽에는 이리 뒤틀리고 저리 뒤틀린 소나무를 보게 된다. 그 소나무 가지는 여륾 날씨에 휘어진 엿가락 모양 너무나 뒤틀리고 꼬여서 그 세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제대로 물도 얻어먹지 못한 갈증에 허덕인 세월도 있었으리라. 사람처럼 보릿고개를 넘긴 세월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운 소나무에 은수님, 청림님, 산들바람님이 차례대로 앉아서 추억쌓기를 해본다. 그리고 오른쪽 절벽에 서 있는 뒤틀린 소나무에 노홍철님이 올라가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노홍철님이 있기에 백산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 또한 청림님도 노홍철님과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낸다. 그래서 백산은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두 사람 때문에 웃음꽃이 산봉우리에 휘날린다.

 

 

그 너럭바위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있는 석화봉과 석화바위 능선을 쭉 훑어보니 금강산 비경에 못지 않다. 암릉 위로 소나무들이 대머리 머리카락처럼 쭈삣 올라와 있고 암릉의 끝은 북쪽으로 코끼리 엉덩이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이 멋지다. 그래서 저 능선을 걸어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북쪽으로 영인봉이 건너 보인다. 시간상으로 계산을 해 보았을 때 코 앞에 있는 영인봉까지 갔다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답지에 대한 도전심이 슬슬 발동한다. 최근 조사 발표에 의하면 남자들은 항상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한 여자에게 마음을 두지 못하고 늘 새로운 사람에게 눈이 돌아간다고 한다. 거기에 비해서 여자들은 친숙한 남자나 사물에 믿음이 더 간다고 한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고착된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누운 소나무가 있는 너럭바위를 조금 내려가니 암릉과 암릉 사이가 5미터의 정도의 사이가 벌어진 침니가 나타난다. 여기를 건너려면 5미터 정도의 직벽을 외줄을 타고 내려 간 후 다시 2미터 높이의 직벽을 올라서야 한다. 나무다리나 철교가 있다면 바로 건너갈 수 있겠지만 자연 상태 그대로의 직벽이다. 직벽에 걸려 있는 외줄도 소나무에 외로이 걸려 있다. 먼저 청림님이 내려가서 저쪽으로 건너가서 이쪽을 향해서 코치를 한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리며 한 사람씩 타고 내려가 본다. 발을 붙일 공간이 있긴 하나 생각보다 수월치는 않으나 이 정도의 암벽은 백산의 여자 회원들이라면 거뜬히 해낸다.

 

 

건너편 암릉을 오르기 위해 한 사람씩 청림님의 손에 의지하여 공중에 달랑 매달려 암벽 중간에 발판을 딛고 올라선다. 그런 다음 북쪽의 큰 바위 뒤를 돌아서 또 다시 가파른 10여 미터의 암벽 사잇길로 외줄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스틱도 많이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노홍철님이 스틱을 아래에서 먼저 받아 준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산행이기에 회원 간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져 가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먼저 내려간 운해님은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산행 종군기자처럼 일행들의 일거수 일투족, 그리고 표정을 잡기에 여념이 없다. 인원이 많다보니 암벽과 암릉에서 대기 시긴도 길어진다. 그래도 함께 진지하게 땀을 흘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이제 영인봉과 도락산 임도로 빠지는 삼거리 갈림길에 선다. 건너 보이는 영인봉의 암벽에 눈이 자꾸만 간다. 노홍철님, 방랑자님, 유인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은 의기투합하여 영인봉을 갔다 오기로 했다. 갔다오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 삼거리를 지나 조금 가니 선두조의 금호지님 부부, 태영님, 흔적님, 종현님 등의 일행 10여 명이 영인봉을 갔다 내려오고 있었다. 종현님은 거기에 가 보았자 볼 것이 없더라고 바람을 잡는다. 그러나 우리 넷은 마음먹은 김에 가기로 했기에 흔들림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종현님은 정말 손때가 묻지 않은 멋진 곳이고 가보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웃으며 얘기한다.

 

 

영인봉은 층층이 암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내가 앞에 서서 암벽을 타기 시작한다. 중턱에 오르니 내려다 보는 비경을 오르지 않고 지나쳤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뻔 했다. 어디에 그런 비경이 있을까? 영인봉 바로 발 아래의 암봉은 마치 병풍처럼 오목하게 둘러싸여 있고, 그 옆에는 노송이 파수꾼처럼 지켜 서있는 모습에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건너편 누운 소나무에서 조금 내려온 곳의 암벽은 기암절경의 비경인데 깍아지른 바위가 삼층을 이루고 그 위에 노송이 어루어져 가슴에 진한 감동이 물결쳤다. 마치 금강산의 어디쯤에 온 느낌이었다. 문경 황장산(1,077m)의 멋진 촛대바위를 꼭 보려고 했었는데, 대신 보상이 된 느낌이다. 후미의 붉은노을님, 햇띵구님, 숙이님이 그곳 기암절경 위를 막 지나오고 있는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네 사람은 영인봉 중턱의 암릉을 헤치고 외줄 타기도 하며 정상에 올라서 기쁨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 비경을 눈에 두고만 있을 시간이 없다. 이미 일행들은 모두 하산을 해버린 터라.

 

 

네 명은 764봉을 넘어서 도락산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그리고 764봉에서 조금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방울토마토를 나눠 먹으며 우애를 다진다. 그리고 오붓한 산길을 걸으며 방랑자님과 두 번째 산행에 참가한 유인님과도 얘기도 해 본다. 정기산행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산행을 하다 보니 얼굴은 알지만 닉 네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통 성명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에. 후미조는 때론 이런 오붓한 재미도 있는 것이다.

 

 

도락산과 인접한 사방댐 부근의 개울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 간 일행들이 알탕과 족탕을 한다고 소란스럽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기에 얼굴과 머리를 씻어 본다. 초여름이 녹아내린다. 온 몸은 서서히 시려온다. 태영님이 막걸리가 한 잔 정도 남았다고 가져온다. 그리고 안주로 오이도 건네준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전우 같은 동지. 오늘의 인생 산행은 끝이 났다. 모든 시름과 고통, 번뇌는 땀으로 그리고 냇물에 다 떠내려 보낸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다. 세상은 혼자 걸어가면 재미가 없다. 요즘 혼자서 식사를 때우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혼자서 꾸역꾸역 식사를 하는 사람은 그게 식사가 아니라 사료를 먹는 것이고, 홀로 산행을 하는 사람은 고독병의 시발이라고 한다.

 

 

개울에서 개운한 기분을 안고 사방댐 옆으로 내려간 다음, 임도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그리고 30분을 달려 충주 호반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겸해서 반주를 한 잔씩 한다. 운해님의 “백산을 위하여~~” 하기도 전에 여기저기 백산의 구호가 터져 나온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고 누가 가장 소중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도 온 회원과 게스트 여러분이 함께 산행을 했다. 아무 탈 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넘고 넘는 산봉우리 속에서 우정이 쌓이고, 땀방울 속애서 사랑의 씨가 잉태된 하루였다. 닫힌 마음이 수풀 속에서 열렸다. 뭐 욕심 없는 자연 앞에 꼬꾸라진 하루였다. 일행들도 막걸리 잔을 부딪히며 반쯤 열린 가슴을 완전히 열어 보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백산의 이름으로 오늘도 외친다.

“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백산이 좋다!”

 

 

*산행지도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