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소녀와 아코디언

부산갈매기88 2009. 8. 18. 09:13

“헛된 꿈을 쫓지 말라. 성공하는 사람은 헛된 욕심과 분노로부터 자유롭다.” <아부 바크르>

 

 

남루하게 옷을 입은 눈이 큰 한 소녀가 낡은 아코디언을 메고 정육점으로 들어왔다.

“저, 고기 한 근 주세요.”

 

그렇게 말한 소녀는 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졌다.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갑을 안 가지고 온 모양이에요. 죄송하지만 이 아코디언을 맡기고 돈을 가지려 가면 안 될까요?”

 

주인은 믿지 않았지만 고기를 주지 않았으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소녀가 나가고 잠시 후, 정육점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신사가 들어왔다. 주인은 인사를 하며 아코디언을 처리하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아, 주인양반. 그 아코디언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젊은 신사가 무엇에 홀린 듯 아코디언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더니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아코디언을 제게 팔면 안 되겠습니까?”

 

젊은 신사는 아주 귀한 것을 본 것처럼 아코디언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주인에게 막무가내로 졸랐다. 그러나 주인은 소녀가 곧 온다고 했으니 지금은 팔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 그 소녀가 오면 꼭 제 말씀을 전해 주세요. 내가 2만 프랑을 주고 아코디언을 사겠다고요.”

주인은 무슨 영문인지 잘 몰랐지만 그러겠다고 하고 아코디언을 옆에 잘 두었다. 잠시 후, 소녀가 약속대로 고기 값을 들고 정육점을 찾았다. 주인은 젊은 신사가 한 말은 쏙 빼고 이렇게 말했다.

 

“얘야, 이 아코디언을 나한테 팔아라.”

 

“이 아코디언은 집안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물건이라서 팔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주인은 끈질기게 소녀에게 아코디언을 팔라고 설득했다. 너무나 간절하게 부탁하는 주인의 모습에 소녀는 결국 아코디언을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주인이 소녀에게 건네 준 아코디언 값은 겨우 3천 프랑이었다. 주인은 곧바로 셈을 했다. 젊은 신사는 2만 프랑을 산다고 했으나 자기의 몫으로 1만 7천 프랑이 남은 셈인 것이었다. 주인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소녀에게 고기 값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아무리 기다려도 젊은 신사는 정육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종웅 <행복은 물 한 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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