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잊혀졌던 소녀

부산갈매기88 2009. 9. 12. 18:10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 참고 인내하면서 노력해 가는 것이 인생이다.” <맨스필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나가기 전 중매로 만난 여자와 약혼 날짜를 잡던 날,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길목에서 느닷없이 잊혀졌던 한 소녀를 기억해냈다.

 

그 소녀는 8년 전, 재수생 학원이 즐비했던 종로거리의 분식집에서 일했다. 그때 재수생이었던 그는 그녀를 보기 위해 분식집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곤 하였다. 그에게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의학박사였던 부모님과 서울대를 다니는 형,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누나 사이에서 2차 대학도 떨어진 그는 가문의 수치요, 부끄러운 존재였다.

 

어느 날, 밤일을 끝내고 혼자 돌아가는 그녀를 만났다. 그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 앞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초라한 자취방에서 그녀 혼자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둘은 가까워졌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교회를 다니는 그녀는 매일 새벽 그를 위해서 기도했다. 그의 기도 덕분이지 그는 부모님이 바라는 서울대에 합격했고 가족들과의 사이도 회복되었다.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부모님께 간청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녀가 고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대했다. 그는 그녀를 선택했고 집을 나와 그녀의 자취방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미친 듯이 찾아다녔지만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모든 일도 조금씩 잊혀져 갔다.

 

그리고 8년이 흐른 후, 잊은 줄로만 알았던 그녀를 기억해낸 것이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이끌리어 그녀가 자랐다는 보육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뜻밖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6년 전, 아기 엄마가 되어 보육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와 보육원의 아이들을 돌보며 생활하다가 2년 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녀는 마지막에 유품을 원장님에게 전해주면서 혹시 누가 찾아오거든 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낡은 성경책 한 권과 닳고 닳은 십자가 목걸이였다. 그는 오랫동안 통곡했다. 잠시 후 원장님은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너무나도 자신을 닮은 아이였다.

 

*진심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져 있어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랑을 욕심내지도 말 것이며,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도 말자. 그와 당신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훗날 다시 만나게 될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김종웅 <행복은 물 한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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