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할아버지의 도시락

부산갈매기88 2009. 9. 18. 09:55

“만일 우리가 사랑했다면 하느님은 우리의 가슴속에 머무를 것이다.” <톨스토이>

 

 

우리 회사 앞 양쪽 보도블록에 죽 늘어선 노점상에는 항상 사람들이 제각기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구두 수선집, 튀김가게, 신문 가게 등 온종일 조그만 네모 상자 안에서 일하는 그분들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이렇듯 각양각색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그곳에서 네모난 가판대도 없이 일흔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돗자리를 펼쳐 놓고 손톱깍이, 가위, 도장집, 돋보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잡동사니들을 팔고 있다.

 

햇볕이 내리쬐면 쬐는 대로 그것을 다 맞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할아버지는 뚝딱뚝딱 조립도 하고, 이따금씩 담배를 입에 물고 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뿜기도 하셨다.

 

할아버지의 점심은 항상 컵라면 하나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한편으로 몸을 돌리고 후후 불어가며 그것을 맛나게 드시곤 하셨지만 어쩐지 나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 했다. 그래서 일부러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살 때도 많았다.

그런데 그 날은 일찍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할아버지 앞을 지나치다보니 할아버지가 다른 때와는 달리 도시락을 드시고 있었다. 웬일일까 궁금했지만 우선은 라면보다 밥을 드신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나는 곧 건물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침 그 안에는 아가시 둘이 타고 있었다. 한 아가씨가 친구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디 갔다 오는데 말하기 그렇게 어려운 거야?”

“응, 그냥 저기.”

“말을 안 하니까 더 궁금하다. 대체 어디 다녀오는데? 말 좀 해봐.”

“요 앞에 장사하는 할아버지한테, 며칠째 계속 라면만 드시길래 아침에 내 도시락 싸면서 하나 더 싸가지고 왔거든. 그걸 갖다 드리고 오는 거야.”

 

부드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아가씨의 말에는 따뜻함이 물어 있었다.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름다운 그녀의 마음씨만큼이나 그녀가 예쁘게 보인 것은 당연하다.

 

*사람의 얼굴와 표정은 그 자신의 마음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마음속에 추한 것, 어두운 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표정도 딱딱하고 호감이 가질 않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아름답다. 그것은 외모가 고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절로 배어나오는 자연스러움이다. 마음의 아름다움으로 아름다워지는 진정한 미인들이 많은 세상을 만들자.

 

 

김종웅 <행복은 물 한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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