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할머니의 벽지

부산갈매기88 2009. 10. 12. 07:59

 한 목사남이 할머니 한 분의 집에 심방을 갔다.

 

달동네에 기어들어 갔다 나올 정도의 집이었다.

너무나도 찢어지게 가난한지라 이불도 누더기로 기운 듯 이것 저것 잇대어져 있는 것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있다.

 

심방 기도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할머니는 굳이 부엌에 가서 과일을 내어 오겠다고 했다.

목사로서 애써 사양해보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집에 온 목사님을 맨입으로 그냥 돌려보내실 수가 없다고 부엌으로 나갔다.

 

벽은 신문 쪼가리로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여 있어서 읽을 거리가 있어 심심치는 않았다. 그 벽을 훑어보다가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목사님은 그 벽에 있는 그것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생각을 하면서 쳐다 보았다.

 

이 가난한 집에 벽지로 그것을 붙여 놓다니, 가짜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어서 할머니가 과일을 깍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궁금하여 목사님은 할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벽에 붙은 저것은 무엇인지요?"

 

"아, 그거 말입니까? 내 아들 녀석이 미국에서 편지와 함께 보내왔는데, 이왕 보내 줄려면 시퍼런 배추 이파리 만 원짜리라도 보내줄 것이지..... 저런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것을 보내왔지 뭡니까. 그래서 벽지로 발라 두었지요. 내가 청상과부로 그 놈을 파출부, 행상, 노동 잡일 등 안 해 본 것 없이 해 키워서 미국까지 보냈지요. 그러면서 이제는 고생 끝이라고 하면서 편지와 함께 저것을 보내왔지요."

목사님이 그 벽지에 바른 것을 쳐다보니 눈에 휘둥그레졌다.

'저것만 있으면 이 할머니는 고생 끝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저게 뭣인지 아세요?"

"몰라요. 천 원 짜리 만 원짜리로 나에게 보내주었다면 요긴하게 쓸 것인데, 저런 것은 화장실에 휴지로도 사용 못 하잖아요. 너무 빳빳해서......"

 

"할머니, 저게 돈 입니다. 수표라는 거지요. 아마도 은행에 가져가시면 6천만 원이 넘는 거금이 될 겁니다."

 

"예?"

 

할머니의 아들이 보내준 것은 수표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그가 보아 온 큰 돈은 고작 만 원짜리 였으니까.

 

우리도 사노라면 자신이 귀중한 보석을 길거리에 지천으로 있는 돌보다도 더 못하게 여기면서 그게 진짜 보석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보석은 자식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주위의 이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손에 쥐고 있는 재물만이 보석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 보석을 너무 멀리서 찾으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손에 쥐고서도 다른 데서 찾으려고 먼 길을 돌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행복 또한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손과 가슴에 소유하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기에 행복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늘 불행하다고 노래한다. 여름 한 철의 매미 소리처럼.

 

그 가치를 발견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복된 하루가 되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