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도전과 응전

부산갈매기88 2010. 2. 16. 08:58

한 부자가 있었다. 부자는 아름다운 섬을 사들여 나무와 꽃을 심어 푸른 초원을 조성했다. 그리고 토끼와 사슴을 자연 상태에 풀어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동물들의 눈빛이 흐려지고 윤기가 사라지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처럼 좋은 환경에서 병이 나다니?’

 

수의사를 불렀지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자는 마을의 현자를 찾아갔다. 부자의 이야기를 들은 현자는 껄껄 웃으면서 섬에다 이리 한 마리를 풀어 놓으라고 말했다. 현자의 말에 부자가 놀라자 현자가 말했다.

 

“토끼와 사슴의 병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긴 병입니다. 이리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눈에는 빛이 나고 털에는 윤기가 흐를 것입니다.”

현자의 말대로 이리 한 마리를 풀어놓자 이들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토인비는 불멸의 저작<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했다. 또 도전이 없었던 민족이나 문명도 무사안일에 빠져 사라지고 말았다.

 

토인비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도전과 응전이라는 테마의 힌트를 얻었다. 교양 있는 어머니로부터 그리스, 로마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웠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대사를 공부했다. 졸업 후에 그리스, 로마사 연구원으로 학교에 남았다. 그 시기에 처음으로 그리스를 여행하게 되었고 나중에 맨체스터 가디언 지의 그리스 특파원으로 다시 그리스에 머물 기회를 가졌다.

 

그리스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자주 찾았다. 그 신전은 그에게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주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BC447~432SUS 사이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웅장함과 뛰어난 미술성으로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25개의 기둥이 공중으로 떠받들고 있는 모습의 이 신전은 소박한 듯 화려하고, 단아한 듯 풍요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도리아식 건축물의 백미로 꼽힌다.

 

이 신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벽면 조각의 아름다움에 있다. 신전의 벽면에는 신화에 나오는 반인 반수의 괴물과 인간과의 싸움, 아마존 여전사의 싸움, 트로이의 함락 등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파르테논 신전의 운명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역사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마다 혹은 기독교 예배당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혹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687년 터키-베네치아 전쟁 때는 탄약고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중 베네치아 대포가 탄약고를 폭파하는 바람에 신전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영국인들이 이곳의 조각품 상당수를 뜯어내어 대영 박물관으로 옮겨 갔다.

 

토인비는 반파된 파르테논 신전 언덕에서 낙후된 아테네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그 옛날 이처럼 화려한 문명을 일으켰던 민족의 후예들은 지금 무어란 말인가?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의문을 품으며 깊이 읽었던 책이 독일의 역사가 슈펭글러가 쓴 <서구의 몰락>이었다. 슈펭글러는 역사를 하나의 순환과정으로 보았다. 역사도 다른 생명체들처럼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그리스나 로마처럼 그 어떤 강대국이나 민족도 흥망성쇠를 피할 수 없으며 서구의 몰락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이었다.

 

토인비는 문명을 일으킨 자연환경은 안락한 환경이 아니라 대부분 가혹한 환경이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는 늘 발전에서 뒤처졌다는 지적이다. 고대문명과 세계 종교의 발상지가 모두 척박한 땅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토인비는 가혹한 환경에 성공적으로 응전한 사례로 이집트 문명, 수메르 문명, 미노스 문명, 인도 문명, 안데스 문명, 중국 문명 등을 들고 있다.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원래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지금부터 5000~6000년 전 아프리카 북부를 걸치고 있던 강우전선이 북유럽 쪽으로 이동해 가자 아프리카 북부와 남아시아 지역은 빠르게 건조, 사막지대로 변해 갔다.

 

이들에게는 이론상 세 가지의 선택이 있을 수 있었다. 그곳에 남아 기존의 수렵생활을 영위하면서 연명하거나. 그 자리에 남아 있으되 수렵생활 대신 유목이나 농경생활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거나, 거주지역과 생활방식을 모두 바꾸는 셋 중 하나였다. 세 가지 응전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이들의 운명이 갈렸다.

 

그 자리에 남아 조상들의 방식대로 수렵생활을 계속했던 부족들은 오래 가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생활방식을 바꾼 부족은 아프리카 스텝지역의 유목민이 되었다. 그리고 독사가 우글거리는 나일 강변 밀림지역으로 옮겨가 농경과 목축을 선택한 부족은 마침내 찬란한 이집트 문명과 수메르 문명을 일구었다.

 

나일 강변은 수량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해서 농사짓기에는 적합했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나일 강의 범람이 또 다른 시련이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범람시기를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이나 태양력이 발달하고 범람 후의 경지 측정을 위해 기하학이 발달하였다.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르래가 발명되고 수레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기반 기술이 되었다.

 

 

이영직 <세상을 움직이는 100가지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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