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협상의 고수가 되려면… 상대의 감성부터 건드려라

부산갈매기88 2010. 7. 3. 13:40

IGM과 함께하는 협상스쿨

진정한 협상 고수는 누구일까? 목소리 큰 사람? 논리로 무장한 사람? 지식으로 승부하는 사람? 아니다. 진짜 프로 협상가는 지식과 논리로 상대를 공략하기 전에 '감성(感性)'부터 건드린다. 고수(高手)들만이 활용한다는 감성적 협상법. 어떻게 해야 할까?

<상황 1> 따끈한 차 한 잔으로 첫 만남의 어색함을 풀어라

오질서 상무는 아침부터 협상 준비로 바쁘다. 최고 클라이언트인 '내맘대로 가구'와의 올 들어 첫 번째 협상이 잡혀 있기 때문. 오 상무는 장소부터 꼼꼼히 챙긴다. 회사에서 가장 조용한 회의실. 일자로 정렬된 테이블. 하나하나 정성스레 놓인 시원한 생수병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약속된 시간이 5분 정도 지나자 '내맘대로 가구'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잡담을 해대는 그들. 듣던 대로 그들은 자유롭다. 심지어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사람도 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내맘대로 가구'의 협상 대표가 "답답하니 10분만 쉬자"고 말한다.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갑자기 휴식을? 오 상무의 협상 준비, 뭐가 잘못됐을까?

■협상 비법 1:"오감을 활용하라"

오질서 상무의 협상 준비에는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협상장의 환경. 오 상무는 가장 조용한 회의실에 테이블을 일렬로 배치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협상장의 모습. 하지만 프로 협상가들은 절대 이런 환경에서 협상하지 않는다. 서로 맞서는 구도는 경쟁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프로 협상가들은 탁 트인 공간, 천장이 높은 곳을 선호한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훨씬 더 긍정적이고 개방적이 된다. 그만큼 서로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 테이블 배치도 중요하다. 반원형 혹은 V자형으로 테이블을 배치해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구도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자'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둘째, 시원한 물. '협상장에 차가운 생수 한 병 올려놓는 게 잘못됐다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한다. 10명의 면접관에게 한 사람의 구직자를 인터뷰한 후, 채용 여부를 결정하라는 미션을 줬다. 모든 면접관들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 구직자는 똑같은 대답을 한다. 면접관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동일한 셈이다. 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 바로 면접관들이 들고 있는 음료수의 종류. 다섯명의 면접관은 차가운 콜라를 들고 있다. 반면 나머지 다섯명은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있다. 자, 차가운 콜라를 마신 면접관과 따뜻한 커피를 마신 면접관. 한 사람의 구직자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놀랍게도 차가운 콜라를 마신 면접관들은 "채용하지 않겠다"고 답한 반면, 따뜻한 커피를 마신 면접관들은 "채용하겠다"고 답했다. 이 실험 결과를 분석한 예일대 심리학과 존 바그(John Bargh) 교수는 "커피의 따뜻한 기운은 사람들을 너그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즉 논리적 존재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감성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오질서 상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도 협상이 시작되기 전 따뜻한 차 한잔을 먼저 대접하며 상대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줬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상무의 옷 선택이 잘못됐다. 상대방은 자유로운 분위기로 유명한 '내맘대로 가구'. 그런 고객을 만나는 자리에 '예의'를 갖춘다며 정장을 쫙 빼입고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독일의 투자은행 드레스너뱅크(Dresdner Bank)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로 알려진 이케아(IKEA) 간에 있었던 제휴 협상 사례를 보자. 이 두 회사의 제휴 가능성에 대한 외부의 전망은 차가웠다. 조직의 분위기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

협상 결과는? 놀랍게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로 타결됐다. 비결은 간단했다. 보수적인 드레스너뱅크의 협상단은 어울리지도 않는 힙합 바지에 티셔츠를 입고서 나타났다. 반면 이케아 협상단은 영화 '영웅본색'을 연상시키는 까만 양복을 있고 협상장에 등장했다. 상대방의 기업문화에 맞추려는 서로의 모습에 양측은 박장대소했고, 협상은 잘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 2> 일단 공감부터 한 후에 제안을 거절하라

"구매 단가를 동결한다고요?"

"네, 내부적으로 단가 인상은 불가능하다는 결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사 결과 올해 원자재 값이 7% 이상 오를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그러면 제조 원가 상승은 불 보듯 뻔한데, 단가를 동결한다니요?"

"원자재 값이 오른다는 건 단지 내부 조사 결과일 뿐 아닙니까? 단가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단가 인상 불가'라는 지침을 강하게 받고 협상장에 나온 강경한 상무. 상대는 원자재 값이 오른다, 운송비가 증가한다, 추가 인건비가 발생한다는 등의 논리를 대며 단가 인상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경한 상무는 '안 됩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회사에서 워낙 강한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급기야 상대는 "아니 그럼 우리 보고 손해를 입으면서 장사를 하란 말씀이신가요? 정말 듣자 듣자 하니까 너무하시네요!"라고 화를 버럭 내고는 협상장을 떠나버렸다.

강경한 상무의 협상법, 뭐가 문제였을까?

■협상 비법 2: "공감하라"

IGM 협상스쿨에서는 이런 협상 실습을 하곤 한다. 한 그룹에는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제안을 거절하라'는 미션을 주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상대의 의견에 공감을 표현한 후, 제안을 거절하라'는 미션을 준다.

그리고 협상이 끝난 후 제안이 거절당한 상대편 사람들에게 협상 결과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다. 결과는 놀랍다.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같지만, 협상 결과에 대한 만족감은 두 그룹이 천지차이다. 물론 후자, 자신의 의견을 공감받은 그룹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 필자가 수십 차례 협상 실습을 진행해 본 결과가 늘 그랬다.

이를 협상학에선 '공감(共感)의 힘'이라 부른다. 상대의 의견에 대해 일단 '공감'을 해 주면 협상의 분위기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라지는 것이다.

앞의 상황에서 강경한 상무는 무조건 "안 된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원자재값이 오를까봐 걱정되시겠군요." "운송비 인상이 염려되시겠군요." 등과 같이 상대의 우려에 대해 공감만이라도 해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상대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공감하면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공감과 인정은 다르다. 그저 상대의 말을 따라 하기만 해도, 그래서 상대가 자신의 입장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만 받아도, 협상이 풀릴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상황 3> 상대가 좋아하는 또 다른 주제를 제시하라

'부자 동네'에서만 소규모 직판매장을 운영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최고급 한우 매장 '일등한우'. 그리고 중소도시 위주로 매장을 갖고 있는 대형마트사인 '모조리마트'.

모조리마트의 나우선 이사는 일등한우 매장을 유치하기 위해 강원도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정성을 쏟았다. 5개월의 구애 끝에 드디어 입점을 결정한 '일등한우'. 그런데 갑자기 가격 문제를 들고 나온다.

"좋습니다. 그렇게 부탁을 하시니 입점하도록 하죠. 단 가격은 현재 제시하신 금액보다 10% 더 주셔야 합니다."

"가격을 10%나 더 달라고요?"

"네. 현재 가격은 도매가를 기준으로 책정한 금액입니다. 마트에선 이보다 당연히 비싸게 판매될 거 아닙니까? 그러니 10% 정도의 가격은 더 주셔야 합니다."

'모조리마트'의 나우선 이사는 당황해 할 말을 잃었다. 가격 인상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유통비와 인건비 등을 빼면 수익이 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

"가격 인상은 힘듭니다. 일단 올해는 현재 가격으로 하시고 가격 부분은 내년에 다시 협상을 해보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다 잡은 줄 알았던 대박 거래처를 잃을 위기에 처한 나우선 이사.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협상 비법 3: "숨은 욕구를 공략하라"

미국의 내셔널 풋볼 리그는 매년 시즌이 끝나고 마지막 행사로 올스타전(프로볼)을 개최한다. 문제는 수퍼스타 선수들이 올스타전에 참석하길 꺼린다는 것. 상금이나 출전비를 아무리 높여도 스타 선수들과의 협상은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풋볼 리그 관계자들은 올스타전 개최지를 하와이로 옮겼다. 그리고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부인 혹은 여자 친구와 함께 올 수 있도록 왕복 항공권 두 장과 하와이 최고급 호텔 숙박권을 제공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스타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 올스타전 출전을 통해 '합법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훈련과 꽉 짜인 경기 일정 때문에 가족이나 애인과 보낼 시간도 부족한데, 함께 하와이로 놀러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꿈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이 협상이 성공한 것은 '돈'이라는 관점을 '여행'이라는 관점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를 협상학에서는 '숨은 욕구(Hidden Interest)를 공략한다'고 표현한다. 지금 당장의 협상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더라도 상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또 다른 안건을 제시해 협상을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방법인 셈이다.

앞의 상황에서 '모조리마트'의 나우선 이사도 '일등한우'의 숨은 욕구를 공략해 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이런 제안도 가능하다. "저희 마트 입점 후에 다른 대형 마트와의 거래선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이를 통해 전국 규모 마트에 유리한 조건으로 입점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상대인 '일등한우'가 전국 규모 마트 입점에 관심이 있다면, 모조리마트와의 가격 조건에는 크게 매달리진 않을 수 있다. 혹은 "소를 키우는 데 필요한 다양한 물품을 우리 마트에 들어오는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하면 어떨까? 상대가 축사 유지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 이를 받아들이고 가격 조건을 양보할 것이다.


■ 에필로그

차가운 '돈'이 오가는 협상. 그래서 우리는 협상장에선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 협상가들은 냉정하면서도 따뜻하다. 상대의 감성을 읽고 공략하는 협상. 협상 고수가 되는 첫 단계다.

 

 

<IGM(세계경영연구원) 최철규 부원장·김한솔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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